Los Angeles

91.0°

2019.10.23(Wed)

[스토리 In] 교도소에서 온 지나씨의 편지

[LA중앙일보] 발행 2016/03/0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3/06 14:55

"이젠 용서해줘도 되는데…." 편지를 전달해주면서 아둘람 재소자 선교회의 임미은(65) 선교사는 안타까워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지나 한(42)씨다. 1996년 전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던 '쌍둥이 자매 살인미수사건'의 범인이다. 10대 소년 2명이 그녀의 '지시'를 받아 쌍둥이 언니 서니씨의 집에 찾아가 권총으로 위협하고 크레딧 카드와 신분증을 빼앗았다. 그녀는 경찰이 출동하자 도주했고 당일 밤 샌디에이고 공항 근처 렌트카 회사에서 체포됐다. 당시 검찰은 "전과 기록이 있는 지나씨가 쌍둥이 언니로 행세해 새 삶을 살기 위해 언니를 죽이려 했다"고 했다.

'살인미수'였지만 법정은 살인죄와 같은 형량인 26년~종신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계획적으로 사주한 범행이고, 전과자라는 점을 들어 지나씨를 "사회와 가정에 위험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20년째 지나씨는 감옥에 갇혀있다.

이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그녀의 근황을 최근 지면에 실었다. 교도소에 면회 온 엄마와 10년 만의 재회본지 2월24일자 A-3면>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인사회 앞으로 쓴 '참회의 편지'본지 2월27일자 A-3면>를 후속으로 썼다.

기사가 나간 후 몇몇 독자들의 지적이 있었다. "죄를 졌으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무슨 영웅도 아니고…" "나쁜 X을 왜 썼느냐" 등 가시 돋친 말들이었다.

기사를 쓴 이유는 그런 '가시'들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사건 발생 후 지나씨를 불쌍히 여긴 몇몇 단체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한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가족, 윤리를 중요시하는 한인 특유의 정서상 '언니를 죽이려 한' 동생에게 동정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았다.

임미은 선교사는 한인마켓 앞에서 서명운동을 하다가 당한 설움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서명해 달라고 준 펜을 저한테 집어던지고, 입에도 담기 힘든 욕을 하고… 대부분이 왜 서명운동을 하는지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어요."

지나씨의 엄마가 10년간 면회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그 가시들 때문이다. '벌받아 마땅한 딸'이지만 딸이기 때문에 살려달라한 엄마는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또 다른 먹잇감이 됐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팠고, 갇힌 딸을 만나러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LA에서 지나씨가 수감된 중가주 교도소까지 왕복 10시간이 넘는 거리다.

엄마마저 멀어지면서 가족이 없어진 지나씨는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중형 선고에 대한 억울함에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분노와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녀를 다독인 사람이 임미은 선교사다. 매년 4~5차례 지나씨를 면회 갔다. 특히 그녀의 생일을 잊지 않았다. "강한 아이예요. 그 안에서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고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몰라요."

감옥에서의 20년이 지났다. 사건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앳된 그녀는 이제 마흔을 넘긴 중년 여성이 됐다. 내년에 그녀는 가석방 심사를 받아 출소할 수 있게 된다. 마침내 풀려난다는 희망도 있겠지만 20년 전 멈춰버린 바깥 세상 시계에 대한 두려움도 클 것이다. 얻고 싶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 때문이다.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회'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손으로 꾹꾹 눌러쓴 1843자에 담아 한인사회에 보냈다. 그녀가 편지에서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 문장이었다. 용서해달라는.

용서(Forgive)는 먼저(fore) 주는 것(give)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녀는 편지에서 다른 억울한 재소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 것일지 모르겠다. 바깥 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어 달라는.

이젠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관련기사 스토리 In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