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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트럼프 죽이기와 중산층

[LA중앙일보] 발행 2016/03/08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3/07 20:37

안유회/논설위원

호떡집에 불이 나면 이럴까. 공화당이 공개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죽이기에 나섰다. 자기 당의 경선 1위 후보를 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죽이겠다고 나섰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다.

처음엔 트럼프를 허경영쯤으로 여긴 게 분명하다. 어차피 대통령 감이 안되니 저러다 말겠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단기필마로 공화당 내 적수들을 하나 둘 하차시켰다. 어~ 어~ 하는 사이 정치 명문가 출신인 젭 부시마저 속절없이 무너졌다.

트럼프가 수퍼화요일에서 대승을 거두자 공화당은 다급해졌다. 지난 3일부터는 당내 유력인사들이 나섰다. 201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미트 롬니가 "트럼프는 가짜며 사기꾼"이라고 공격했다. 미워하다 닮는다고 트럼프의 막말을 비난하더니 트럼프를 공격하는 말은 트럼프를 닮고 있다.

2008년 대선후보였던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각없고 위험한 트럼프의 발언을 둘러싼 우려에 공감한다"고 거들었다. 공화당 1인자로 꼽히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롬니는 공화당 지도자 중 한 명이라고 거들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언론담당 부보좌관였던 토니 프래토는 7일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트럼프를 공격했다.

트럼프를 공격한다고 공화당의 잘못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내정책담당 부보좌관을 지낸 브루스 바틀릿은 7일 "공화당은 죽어야 산다"며 트럼프에 표를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야 공화당이 대통령을 배출할 자격이 있는 중도우파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2009년 티파티를 끌어안으면서 200년 중도정치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트럼프의 등장은 중도정치 포기의 결과일 뿐이다.

공화당이 중도우파에서 강경우파로 기우는 동안 중산층은 조금씩 정치의 핵심현안에서 멀어졌다. 미국의 중산층은 중산층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중산층이 아닌 이들에게는 중산층 진입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좌절감이 있다.

여기에는 자식 세대가 중산층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포함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대학 진학률이다. 1967년 25%를 갓 넘었던 대학 진학률은 이제 50%를 향하고 있다. 중산층 되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반증이다.

한때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걸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학 진학률과 경쟁률이 계속 높아지는 건 결국 중산층의 벽이 높아졌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그나마 대학 졸업이 중산층 진입을 보장하지 못하자 이젠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퓨리서치센터는 중산층의 불안감을 수치로 보여줬다. 지난해 중산층은 49.9%였다. 43년 만에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중산층이 계속 줄고 있는 상태에서 공화당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종교와 총기, 이민에 강경입장을 보이는 표에 매달렸다. 중산층 문제 해결은 멀리 있고 강경보수의 표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중산층 진입에 절망한 이들은 이민자와 대외정책을 비난했고 이들의 심리를 읽은 트럼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중도우파의 시각과 자세를 회복하지 못하면 제2의 트럼프가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는 민주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득세를 신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민주당 성향의 노동자 표를 잠식할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를 막는 길은 중산층의 꿈을 살리는 정치다. 어떤 정당이든 중산층의 문제를 외면하는 순간 중도정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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