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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도를 넘은 한글 오염

이성연/경제부 차장

한글이 파괴되고 있다.

얼마 전 한국내 한 대형호텔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텔 결혼식과 관련된 홍보글을 접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XX호텔이 선보인 웨딩은 클래식하고 유니크한 유러피언 스타일의 '타이 더 노트' 웨딩 컨셉을 선보였습니다… 다양한 매듭을 활용한 오브제와 플라워 데코로 연출해 XX만의 세련미와 품격있는 예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안됐다. 여러 번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읽고 있는 글이 한글인지 영어인지 헷갈린다. 또, 이 호텔이 추구하는 결혼식의 콘셉트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문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유명 호텔의 홍보글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홍보글도 마찬가지다.

신문 광고에는 외래어와 축약어가, 소셜미디어에는 신조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엄연히 잘못된 표현을 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한국 국립국어원도 매달 신조어를 발표하는 마당에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시대 흐름에 따라 한글도 변화되는 현상일 수도 있고 외래어의 자연스러운 사용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필요한 영문 사용은 한글의 본질을 파괴하고 있다. 정부단체들은 앞다퉈 'K-컬처' 'K-팝' 'K-푸드' 'K-시푸드' 등 'K'자를 남발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어느 순간 'K'가 한국을 나타내는 대표 알파벳이 되었다.

한글 파괴 문제는 비단 이 업체와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커피, 잔돈 등 사물에 존칭을 하며 '과잉 존중 강박증'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TV, 신문 등 미디어 및 마케팅 업체들이 한글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일상에서도 이런 일이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먹방, 쿡방이라는 신조어는 물론 일부 TV 프로그램은 '줄임말' 제목으로 이목을 끈다. 자극적인 단어로 대중의 관심을 끌거나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도 있다.

최근에는 이를 활용한 마케팅 사례도 등장했다고 한다. 틀린 단어를 퀴즈형태로 맞추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이다. 틀린 맞춤법 단어를 사용해 만든 소설까지 등장했다. 기사에도 우리말 대신 영어로 표기하는 습관이 굳어졌다. 레시피(조리법), 힐링(치유), 핑크(분홍), 와이프(아내) 등 한글로 대체할 수 있는 외래어 사용이 늘고 있다. 외래어의 홍수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언론과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 업체들은 최소한 바른 우리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화재 보존처럼 한글을 훌륭한 모습으로 보존하는 것 역시 후손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값진 일이 것이다. 유네스코가 한글을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한글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해서다.

한글의 날에만 잠시 부각되는 '한글 사랑'보다는 심각한 한글 오염 속에서 우리말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끼며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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