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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자꾸자꾸 손 씻는 여자

천양곡 신경정신과 의사

매달 한번씩 지난 1년동안 나를 찾아오는 환자가 있다. 이혼한 젊은 여자로 양로원에서 간호 보조원으로 일하는데 환자의 건강 보험은 1년에 10번만 정신과 의사한테 가서 진찰을 받을 수 있는 걸로 되어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는 시간도 정해져 있어 초진이면 45분 그 다음부터는 15분씩이다.

"치울게 하나도 없어요. 모두 깨끗하거든요" 젊은 여자가 나에게 처음 한 말을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이 환자를 의뢰한 의사에게 이리 귀띔을 받아 강박증이 심한 여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게 아니고 그저 그렇다고 중얼거리는 말이 다른 환자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강박증 자체도 치료하기 어려운데 애매한 말까지 하는걸 보니 힘든 환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갔다.

환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어렸을 때 아버지도 모르며 술과 마약에 중독 된 어머니가 그녀를 들판 옥수수 밭에 버리고 동네를 떠난 후 나이든 할머니가 키워주었다. 아홉 살 되던 해 외삼촌한테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했고 어떤 땐 삼촌이 그녀의 생식기에 수저나 칫솔을 집어넣기도 했다.



그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집안 청소나 빨래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엇이든 깨끗이 하면 그녀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서도 그녀의 습관은 변하지 않아 청소를 잘하는 여학생으로 칭찬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양로원에 간호 보조원으로 취직했고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본업인 간호원 조수 일이 끝나면 양로원 환자들의 방을 치워주는 청소부 일까지 하자 우수한 직원으로 상장도 받았다. 밤늦게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밥을 먹자마자 집안 청소와 자식들의 옷을 빨아대는 아내를 막지 못하는 남편은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청소와 빨래하는데 소비했다. 그리고는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별도로 손을 씻고 또 씻었다. 청소할게 없으면 마루나 천장에 있는 히터까지 들어내 먼지를 털어 내자 아파트 주인은 몇 년간 렌트비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1년 반 전부터 그녀에게 이상한 증상이 하나 더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나 이빨 닦는 사람만 보면 심한 구역질이 나고 그 사람 입 속에 나뿐 균이 그녀의 몸에 들어와 병들어 죽게 만든다는 망상증이다. 나중엔 자기 아이들까지도 칫솔질을 못하게 하자 결국 정신과 의사한테 의뢰 되어온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열 번까지 최선을 다해 여러가지 정신과 약을 써보았지만 환자의 증상은 차도가 없었다.

인간의 영혼을 다룰 때 꼭 신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의 편에도 설 수 있어야 진정한 사제나 전도자가 될 수 있듯이 정신과 의사 또한 프로이드의 분석 학에 근거를 둔 정신 치료와 과학지식만을 고집하는 약물 치료 외에 개개인의 종교적 초자연적 생각을 중요시 하는 영성 치료법도 같이 사용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나의 조그만 자존심을 접고 그녀가 다니는 교회 성직자에겐 영적 치료 같은 건물에 있는 심리학 박사에겐 상담 치료를 부탁했다.

이제 2006년이 되어 그녀의 건강 보험에서 받는 열 번의 기회가 있으니 그때까지 여러 문헌들을 찾아 약물 치료에 대한 공부를 더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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