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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봄을 긷는 마중물, 봄비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잔뜩 찌푸린 하늘을 이고 해거름에야 늦은 길을 나섰다.

두어 시간 남짓 애마를 닦달한 끝에 큰길을 벗어났다. 한동안 가파른 치받이 길을 오르다 숨을 고르는데, 산자락에 엎드린 고즈넉한 마을과 그 너머 속절없이 널브러져있는 모하비사막 위로 몽환인 듯, 운무가 자욱하다.

선원에 오르는 길섶을 따라, 봄의 전령인 홍매와 백매가 서로 다투며 한창이다. 선원 앞섶의 몇 그루 산벚나무와 배나무는 한껏 부풀어 오른 꽃망울을 금방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거칠고 메마른 포도나무 가지에도 봄물이 오르면서, 군데군데 뱁새 혓바닥 같은 연노랑 새싹을 수줍게 내밀고 있었다.

여우도 눈물 흘린다는 꽃샘바람으로 코끝은 맵싸하나 기분은 삽상하다. 그 잎샘 탓인지 나뭇가지 사이로 앙증맞은 산새들이 재잘대며 제 소리를 앞세워 친구를 뒤쫓거나, 괜히 집적거려 이리저리 쫒기면서 몸을 데운다.



새벽 갓밝이부터 날 낌새가 수상타했더니, 그때까지 사막 위를 빈둥대든 거먹구름 떼가 기어이 내려앉으며 추적거린다.

비는 저녁나절을 지나서도 가만가만 내려 텃밭의 푸성귀나 기슭의 잡목과 푸새에도 제법 생기가 도는 듯하다.

봄의 마중물인 이번 비가 지나고 나면, 충분히 일용할 양식을 얻은 뭇 생명들은 한 해를 건널 채비로 바빠지고, 결실을 향한 열정은 점점 더 여물어 갈 터이다. 또한 따사한 봄볕 아래 흐드러진 산야는, 한결 풍요롭고 여유로워진 바람과 새와 들꽃들의 맑고 향기로운 두런거림과 담론으로 충만할 것이다.

계절의 갈피 속에서 그들에게 지난겨울은 결코, 상실과 소멸의 시간이 아니다. 유장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준엄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 동면이었다. 그 동면은 쉼 없는 쉼으로 수백만 년 거듭된, 자기복원을 넘어 창발적 진화를 위한 치열한 생명에의 의지가 내재된 내밀한 은둔이었으며, 저마다 고독한 몸살을 앓은 칠흑 같은 자궁 속 숭엄한 인고의 시간이었다.

한 송이 좁쌀 같은 들꽃이 피어나는 몸짓으로도 온 우주가 공명하거늘, 모든 존재들이 함께할 경이롭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제전을 부러 일러 무엇 하랴. 이제 봄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지상 최대의 쇼'인 봄의 대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파란하늘에 피어오른 뭉게구름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근세 불세출의 독일 작가 헬만 헤세는, 그래서 '봄이 하는 일은 모두가 아름답다'고 했는지 모른다.

사막을 훑든 거센 바람에 요동치든 빗발도 밤이 이슥해지면서 어느새 잦아들었다. 들리느니 '처마 밑 낙숫물 지는 소리' 그 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무심코 듣고 있노라니 나 자신이었다'

초막 위의 너와를 토닥이는 잔 빗소리에 젖어, 온밤을 뒤척이다 얼핏 깊이 든 그루잠을 깨고 보니, 벌써 해 뜰 참이다. '봄잠 깊이 들어 새벽인줄 몰랐더니/ 곳곳에서 새소리 들려오네/ 간밤에 비바람소리 들렸는데/ 꽃잎은 얼마나 졌을꼬' (맹호연의 '봄날 새벽')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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