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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부모 아픔, 아이들 아픔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두 아들의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다. 그래서 몇 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바탕 싸움을 했고 아버지는 다시 훌쩍 떠나버렸다. 7살과 9살짜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우들과 싸움이 잦았다. 공부 시간에도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고 산만하며 옆의 아이들까지 방해를 했다. 1975년경에 정신과 수련의로 내가 치료했던 '대니'네 가족 이야기다.

그 당시에 뉴올리언스의 공립학교 어린이 중에서 선생님에게 '찍혀서' 소아정신과에 보내지려면 문제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간다. 루이지애나 주 조지아 주 미시시피 주를 모두 합해서 소아정신과 의사는 튤레인 의과대학에 있는 수련의들과 교수가 전부였다. 튤레인 의대의 소아정신과 훈련은 20세기 초반의 아동 상담소 규범을 따랐다.

1930년 당시 미국은 여권 신장과 함께 청소년 보호법을 제정하고 미성년자들의 노동 착취를 막기 시작했다. 베이커라는 판사는 특히 청소년 범죄자들을 많이 다루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감옥에 보내거나 형벌을 가하는 것보다는 치료와 상담을 통한 선도임을 깨달았다.

이들을 범죄로 몰고 간 원인이 많은 경우 가정의 불화나 심리적 문제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최초의 소아정신과 치료소는 법원의 부속 기관으로 탄생했다. '베이커 판사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의 발달과 함께 도시로 몰리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이혼 가정도 늘었다. 이 틈에서 방황하던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분야의 전문인들이 이 클리닉에서 일했다. 우선 아이들을 도와주려면 주위 환경을 이해해야 했다. 당사자인 환자를 소아 정신과 의사가 정신 감정하고 이에 합당한 치료를 하는 동안에 사회사업가는 그의 부모 학교 적응상태 과거의 생활 상태 등을 자세히 조사하고 상담했다.

대니네 가족 4사람은 각자 독특한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빠의 난폭성 엄마의 만성 우울증 두 아이들의 정도는 다르지만 심해가는 행동 문제와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주의산만증 및 열등감 등…. 당시 총 6명인 2년차 정신과 수련의들 중에서 두 소년과 아버지에게 각각의 의사가 정해졌고 나는 엄마를 치료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4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소아정신과 수퍼바이저인 로빈슨 교수와 만나서 치료 결과를 보고하고 다음의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우선 아버지가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가슴에 맺혀있던 상처를 열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고 드디어는 용서를 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대니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대하는 것이 편해졌고 따라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엄마의 우울증은 아이들을 심한 죄의식에 빠뜨리곤 했었다. 왜냐하면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로서는 엄마의 '슬픔'이 자신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간혹은 엄마가 자신을 미워한다고도 믿었다.

"아니요 나는 절대로 아이들에게는 표시하지 않았는데요."

"엄마가 숫제 이야기를 했더라면 아이들이 걱정을 덜 했겠지요."

부모의 아픔이 치유되면서 두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바뀌어 갔다. 나를 소아 정신과 의사의 길로 가게 한 운명적(!)인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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