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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의 작품 세계

펜의 위력에 정복된 캔버스

선.면.여백의 삼중주

볼펜으로 담은 우주관







볼펜추상화. 캔버스와 볼펜의 만남은 어딘가 어울리지않는 것처럼 보인다. 종이 위의 볼펜화는 드로잉과 회화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일 화백이 4반세기 동안 고수해온 볼펜그림은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음악의 본질이 음향인 것처럼 회화의 본질은 색채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화백은 색채를 거부하는 대신 흑색이나 청색의 단색볼펜으로 캔버스를 장악한다.

그의 작품에는 제목 대신 일련의 번호만 있을 뿐이다. 그의 추상화는 마크 로츠코의 색면(colore field) 회화처럼 선입견 없이 무심(無心)하게 명상하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관람자는 마음을 비우고 기묘한 면(form)과 선(line) 그리고 여백(space)이 자아내는 시각적 3중주에 취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화백의 볼펜추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의 작품에는 시간이 담겨져 있다. 볼펜의 선이 기나 긴 시간을 거쳐서 면이 된다. 즉 이 화백의 볼펜화는 '선+시간=면'이라는 공식으로 완성된다. 육중한 '면'과 가벼운 '선'의 놀림이 어우려져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담고 있다.

그러면 그의 캔버스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일지도 인류의 역사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 성장한다. 생각할줄 아는 호모 사피엔스 인류는 문명을 창조했다. 백지에서 시작한 선은 면을 갈망한다. 지식과 지혜 그리고 노동으로 선은 면이 된다. 면이 되지 못한 야생의 선들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화백의 캔버스는 우주와 인간의 인식체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여백은 미지의 세계 면은 인류의 발명과 발견인 것이다. 테두리의 선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지성에 대한 메타포처럼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날카롭게 잘려진 면에 대한 의문이다. 자르는 주체는 무엇일까?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닐까? 거세된 부분에는 풀포기 한 그루 자라지 않는다. 반대 급부로 다른 면들은 자유의지가 살아있는 생명초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육중한 면은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야생의 선들은 자유의지를 지닌 아웃사이더들이며 인간의 역사를 진화시키는 동력일 것이다. 면은 보수이며 선은 반동이다. 인간의 역사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으로 발전해나갈 때 선과 면과 형태는 바로 역사의 한 메타포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화백의 작품은 보여진 부분과 감추어진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의 캔버스는 거대한 우주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알고 가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그의 볼펜 추상화는 고도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이 화백은 프랫인스티튜트에서 판화로 학사를 회화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시일정: ~6월3일

▷API: 429 Greenwich St. #5B 212-343-2599

박숙희 기자

nysuki@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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