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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오바마 대통령과 체 게바라의 초상

김완신/논설실장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포스터가 있다. 일명 '희망(HOPE)' 포스터다. 그림에서 오바마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고, 그의 넥타이와 왼편 얼굴 일부가 붉게 그려져 강렬한 인상을 준다.

포스터는 오바마의 희망과 변화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프로파간다 효과를 발휘했다. 작품의 제작자는 '거리의 예술가' 셰퍼드 페어리. 오바마 지지자였던 그가 제작해 온라인에 배포한 그림을 오바마 캠페인 본부가 승인하면서 대통령 선거의 공식 포스터가 됐다. '희망' 포스터가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이라고 말하는 정치평론가가 있을 정도로 포스터의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잡지 '뉴요커'의 평론가 피터 슈젤달은 미국을 의인화한 큰 모자의 '엉클 샘' 그림을 제외하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포스터라고 평가했다.

포스터가 화제가 된 이유는 또 있다. 쿠바의 혁명 지도자 체 게바라의 초상과 비슷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체 게바라의 사진은 붉은 색을 배경으로 별이 새겨진 검은 베레모를 쓴 모습이다. 포스터는 색상과 두 사람의 시선 등 전체적인 구도와 이미지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실제로 작가도 체 게바라 초상의 느낌을 살려 오바마의 개혁 의지를 담았다고 했다. 선거 캠페인이 한창일 때에는 체 게바라의 베레모를 쓴 오바마 포스터까지 등장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를 해방시킨 혁명가다.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민중의 해방을 외쳤던 그는 쿠바는 물론 전세계 혁명의 아이콘이다.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에 이르지만 항거와 투쟁의 삶은 지금도 혁명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으로는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에 처음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928년 쿨리지 대통령이 쿠바에 올 때는 3일간 배를 타고 왔지만 나는 비행기로 3시간 만에 왔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가 쿠바에 내린 것도 처음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지원을 받던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축출하면서 2년 후 미국과 쿠바의 외교관계는 단절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쿠바를 적대시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망명자의 피그만 침공을 도왔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쿠바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해 쿠바 망명자의 송금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회동했다. 이전에 미국과 쿠바 정상이 회동한 것은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이 있기 전인 1956년이다. 두 정상은 지난 2013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화국 대통령 추모행사에서 만나 세기의 악수를 했다. 지난 해 말에는 역사적인 외교 관계 정상화 조치가 워싱턴과 아바나에서 동시에 발표됐다.

정상이 만난 자리에서 카스트로 의장은 미국이 쿠바를 억압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며 "적대 관계를 떨치고 새로운 세상을 함께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양국의 외교관계는 정상화됐지만 쿠바 금수조치, 관타나모 기지 반환, 인권 문제 등의 주요 현안은 남아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도착 후 아바나의 혁명 광장에 있는 호세 마르티 기념관 헌화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광장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뒤, 건물 외벽에는 체 게바라의 대형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을 배경으로 한 오바마의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체 게바라의 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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