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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바둑을 배우고 싶은 이유

[LA중앙일보] 발행 2016/03/28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3/27 19:12

이재희/사회부 차장

학창시절, 공부가 참 지겨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다시는 교과서 따위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 생각했다. 학창시절, 재미있는 건 참 많았다. 중학교 때는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책은 모조리 읽어야 했고, 고등학교 때는 시험기간에도 영화와 연극, 뮤지컬을 보기 위해 서울 시내를 싸돌아 다녔으며 대학교 때는 콘서트 티켓을 사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고 나니 그냥 모든 게 시들해졌다. 남들은 중국어를 배운다, 도자기를 배운다, 사진을 찍는다, 산을 탄다 바쁜데 딱히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20년쯤 만에 배워보고 싶은 게 생겼다. 바둑이다. 이세돌 vs. 알파고 대국의 영향이다. 바둑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대국을 보며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바둑과 인연이 없는 건 아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보시느라 틀어놓은 TV에서 나오는 바둑중계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끔 두시느라 바둑판과 돌도 있었다. 만지지 않았다. 바둑은 검은 돌과 흰 돌 밖에 몰랐고, '오목보다 어려운 놀이' 정도로만 알았다. 크면서는 오목도 두지 않았다.

한참 후 바둑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2014년. 바둑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 '미생'을 통해서다. 하지만 바둑 자체보다는 드라마 명언과 바둑격언만 와닿았다. 미생과 완생이라는 바둑용어 정도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다시 2015년. 미국에서 바둑보급을 하고 있는 김명완 프로 9단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프로, 아마, 입단, 기재, 대국 등 김 9단이 말하는 생소한 바둑용어는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기재를 기'재'로 써야하는지, 기'제'가 맞는지조차 몰라 사전을 뒤져야 했다.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밤새 단수, 급수 체계 등을 검색하고 프로기사 수와 계보를 찾아야 했다.

2016년 3월. 인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붙었다. 대국 예고기사를 쓸 때도 내가 밤을 새며 대국 중계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불계 같은 바둑용어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가며 새벽까지 대국을 지켜봤다. 대국이 끝난 뒤에는 40~50분을 기다렸다가 이세돌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그 다음엔 쏟아지는 대국 분석 기사와 이세돌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선 때로는 흥미진진하고 때로는 뭉클해져 잠을 못 잤다. 3국쯤부터는 선수니, 우상귀니 하는 바둑용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둑에 대한 관심과 흥미라기보다는 인간 이세돌에 반함이다. 그래도 대국 기간 중 '한 번 배워볼까' 하던 마음은 대국 후에는 '배워야겠다'는 각오로 바뀌었다.

오래간만에 배우고 싶은,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드니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어디서 배울 수 있지 알아보고 '바둑판도 사야겠구나, 집안에 굴러다니던 바둑판을 왜 버렸을까' 아쉬워하는 사이 삶에 활기 같은 게 느껴진다. 왜 사람들이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끊임없이 하는지 알겠다. 하고 싶은 게 생기니 이세돌 9단의 말처럼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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