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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현미경 사랑, 망원경 사랑

수잔 정 가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누구를 사랑하려거든 망원경으로 보시고 미워하려면 현미경으로 보세요."

어느 목사님께 들은 말이다. 옳은 이야기다. 너무 가까워져서 '너'와 '나'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을 때를 가정해 보자. 나만의 슬픔과 분노도 힘겨운 터에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까지 짊어지게 될 테니…. 게다가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나의 고통이었고 어디서부터가 상대방의 것이었는지 분간할 길이 없어진다.

이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계 문제로 가장 고통 받기 쉬운 사이가 바로 부모와 자식 사이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아이가 어리더라도 독립된 인격체임을 존중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머리카락 한 올도 부모님의 것으로 교육 받아왔던 이민 1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식은 '내 것'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면 할수록 내 수중에서 지키며 보호하려 한다. 잘 못 나가면 안 되니까….

약 8년 전에 나는 자폐증을 가진 한 소녀를 만났다. 남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나이에 걸맞은 대화를 못한다. 그러니 자기가 자신 있는 것만 떠들어 대며 대화의 주고받음이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행여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나를 찾아온 어머니의 표정이 어둡다. 나로서도 슬픈 순간이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딸에게 도움이 될까요?" "어머니께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이곳 교육기관에서 재폐아들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게 우리 딸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제가 늘 옆에 붙어있어도 문제투성인데…."

"또 다른 자폐 전문가들이 학교에 상주하고 집에는 아버지와 성인 언니도 있으니 그분들의 협조를 구하시면 어떨까요? 어머니 한분만을 신뢰하던 따님이 어쩔 수 없이 다른 어른들과도 사귀는 방법을 배울 테니까요." "그러면 아이가 오해하지 않을까요? 엄마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머니가 충분히 설명을 해주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랑을 표현해 주신다면 곧 적응할 것입니다. 엄마가 자신을 믿어주고 그래서 잠시동안 씩이라도 엄마와 떨어질 수 있으면 신뢰를 받는다고 느끼지요. 믿어주지 않으면 엄마가 아이를 떠나 있지 못할 테니까요."

소녀의 어머니는 곧 특수교육 교사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을 2년제 대학에서 시작했다. 그 후부터 나를 찾아오는 두 모녀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제가 실습을 나가 보니까 그 전과 달리 이제는 아이를 볼 때마다 즐겁고 기쁘답니다. 아이도 그래서인지 공부를 잘하고 친구도 사귀어 이제는 정규반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의 장로라는 소녀의 아버지는 여전히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다른 교인들에게 들켜서(?) 나쁜 소문이 날까봐 염려해서이다. 딸이 정신과 의사를 본다는 것을 아버지는 수치스러워 했다.

소녀는 이즈음 사춘기의 고개를 힘들게 넘어간다. 자폐증 환자들에게도 인생의 험한 단계는 여전히 찾아오는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그간 좋은 직장을 구했고 자신감이 높아졌다. 그러니 소녀를 울타리에 가둬두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

나름대로 딸의 의사를 존중하고 믿어주려 애쓴다. 현미경이 아니라 망원경을 통해서 아이의 인생을 관망하며 즐길 수 있는 이 지혜로운 어머니에게 "만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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