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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마음 밖에 부처 없다

박재욱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지도법사

"앞산의 저 딱따구리는 생나무도 잘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누나"

구한말 몰락한 궁중의 상궁나인들에게 당대 최고의 선지식 만공선사께서,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시시로 펴는 소참법문 중, 난데없이 던진 농도 짙은 음담(?)이다.

젊은 궁녀들은 입술을 깨문 채, 어른 상궁들의 눈치를 살피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말아 삼킨다. 허나 터져 나오는 웃음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그만 눈물을 찔끔대며 아랫배를 부둥켜안은 채 뒹굴고 만다. 지엄하신 어른 상궁들의 입가에도 물고 있던 엷은 미소가 배어나온다. 그 미소는 젊은 궁녀들의 일탈을 은연 중 방기한다는 징표가 되어 가일층 그들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청상 아닌 청상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잘라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묻었다가 임 오시는 날 굽이굽이 펴고자, 열릴 듯 닫힌 문으로 자주 보낸 눈길이 무릇 기하였으며. 배꽃 흐드러진 위로 달빛 하얗게 부서지던 한밤의 정한을, 그 일지 춘심을 두견새야 알련마는.



평생 한번 입을까 말까한 지존의 망극한 성은이야 애 당초 물 건넌지 오래일터, 그래 이 판에 그놈의 법도가 대수일까. 웃자 웃으라.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만공, 그 노선사가 부린 망령인 게지. 잠시 심기 허하여 새어나온 헛소리인 게지. 아니지 마군의 희롱인 게지. 아니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도대체 그 노장이 뉘신가. 당대 선종의 선맥을 휘어잡고 있던 대선사가 아니시던가.

중국 당나라 때 마조도일 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다. 즉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했다. 그것은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말의 함의는 깨달음의 씨앗, 또는 부처가 될 성품인 불성이 각자 마음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너는 이미 구원받은 몸이라는 것을, 성불은 결코 마음 밖에서 찾아야할 비밀한 행사가 아니라, '뚫린 구멍'으로 이미 존재하는 집안일이라는 기별을 전하고자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무명(無明)에 미혹되어, 그 복된 소식을 한사코 거부하고 믿으려 들지 않는 데 있다.

따라서 이미 '뚫려 있는 구멍'도 못 뚫는 멍텅구리가 되어 부처 찾아 삼만 리 홀연 머나먼 길을 나선다. 더욱이 자신의 심신이 부처 될 종자를 싹 틔울 성스러운 모태임을 알지 못한 채, 극기와 수행이란 명분을 앞세워 죄 없는 심신을 공연히 닦달하여 극한으로 내모는 가학행위를 자랑스럽게 자행한 시절도 있었다.

오죽하면 살불살조(殺佛殺祖) 밖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 했겠는가.

부처란 아득한 초월적 존재이거나 신비한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다. 번뇌와 망념으로 오염된 마음을 '그것'(진리)을 깨쳐, 자기정화라는 수행을 통해 본래 구족한 청정성을 회복하여 '그것'을 사는(자비) 성자를 일컫는다.

어느 이름 모를 비구니(중국 송나라)스님은 그 '뚫린 구멍'이 이미 주어진 집안 소식임을 이렇게 노래한바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도 봄은 보지 못한 채/ 짚신이 다 닳도록 온 산을 헤매었네/ 봄 찾는 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니/ 매화나무 꽃가지에 봄이 한창인 것을"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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