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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영화 '동주'가 던지는 메시지

안유회/논설위원

어떤 영화는 관람 자체가 메시지다. '귀향'과 '동주'가 그렇다.

흥행성과 자본의 장악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영화시장에서 저예산 영화가 설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두 영화도 저예산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흥행의 약점을 안고 있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거대한 규모와 시각적 짜릿함 같은 흥행 코드가 없다.

두 영화는 짧은 시간에 관객 300만 명과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극렬한 자극의 시대에 두 영화의 흥행 성공은 어디에서 왔을까. 작품의 완성도도 있겠지만 이 시대 한국인들 사이를 흐르는 어떤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흐름은 일본의 역사 역주행에 대한 분노와 우려다.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숨기는 것을 넘어 정당화하겠다며 역주행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 위안부가 국가가 개입한 성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간업자에 의한 인신매매, 나아가 자발적 성매매라고 왜곡한다. 독도는 자신들의 영토이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교과서는 급증하고 있다. 이런 역사 역주행의 목적지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의 전환이다.



이 작은 영화들은 일본이 돌아가려는 시대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준다. 몰려든 관객들은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시대를 향해 빨간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관람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공식처럼 통한다. 이걸 깬 것이 '암살'이다. 그래도 '암살'엔 액션과 스타라는 흥행 안전장치가 있었다. 두 영화는 이것마저 없다. 그러고도 일제 강점기 영화가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역사 역주행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는 반증이다.

대중과 호흡하려면 메시지만큼 중요한 것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동주'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윤동주의 시를 챕터처럼 걸고 시인의 삶과 시대를 두 개의 흐름으로 중첩시킨다. 청동거울을 닦듯 안으로 안으로 스스로를 다듬던 시인을 짐승의 시대가 어떻게 압살하는지 절절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윤동주가 시대의 어둔 예감으로 다시 거론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별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노래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일상어로 쓰여진 한국시의 한 정점이었던 그는 언제나 무성한 풀처럼 넘치는 자랑이지만 그를 압살한 시대는 다시 어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이길 바랐지만 어둠은 물러가지 않았고 그는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1인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조 높은 개는/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결국 윤동주를 이렇게 불러낸 것은 역사 역주행의 시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했던 그의 시에는 피냄새 가시지 않은 혈흔이 남아있다.

'동주'를 만든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처럼 섬세한 작가다. 그는 곽경택 감독과 더불어 남자와 남자의 관계를 잡아내는 데 탁월하다. 다만 곽경택 감독이 남자의 관계를 폭력으로 본다면 이준익 감독은 그 내면을 서정적으로 잡아낸다.

윤동주는 원고지에 시를 쓰고 생각날 때마다 고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연희전문 시절엔 청송대를 산책하며 마음 속으로 퇴고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가 원고지에 시를 쓰기 시작하면 퇴고가 다 끝난 것을 옮겨 적는 것에 불과했다.

내면 묘사에 뛰어난 감독이 서정 시인을 불러내 그를 죽인 시대를 말해야 하는 이 시대는 수상한 시대임에 분명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동주'에서 시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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