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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베트남에서의 꿈

수잔 정 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중국으로부터 천년을 프랑스에 백년을 그리고 미국에 십년을 시련 받은 나라" 아직도 공산당의 상징인 쇠스랑 모양의 붉은 기가 관광객들 틈에서 버젓이 날리는 나라 한국군 '청룡' '맹호' 부대의 이름이 아직도 귀에 선한 땅 베트남에 오면 '데쟈부(Dejavue)' 현상을 경험한다.

새로운 곳인데도 마치 예전에 왔었거나 아니면 경험을 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현상이다. 껌을 사라고 졸라대는 거리의 아이들 팔다리를 잃은 채 구걸하러 다니는 상이군인들 내가 어린 시절에 보던 서울의 모습이 이곳 사이공(지금은 호지민 시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시에 펼쳐져 있다.

'호이만'이라는 고도시에는 옛적 이화여자대학 앞처럼 양장점과 내재봉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주인들은 빛나는 눈으로 열심히 손님을 부르고 밤낮 없이 일을 한다. '메콩' 강에서 관광객 유람 쪽배를 저어주던 사공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이라니 여간 반기지 않았다.

"우리가 제일 부러워하는 나라가 한국이지요." "아직은 우리나라 GNP가 아주 낮지만 곧 한국을 따라갈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지요." 곳곳에 세워진 언어학교에는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표말이 선명하다. 아무리 눈을 부비고 보아도 중국어나 일본어가 아니었다.



와! 우리의 한글이 이토록 다른 만족에게도 인기가 있다니…. 이미 10여년 전에 방문했던 중국의 베이징 비행장에는 한국 기업의 이름이 선명한 짐마차(Wagon)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도시 가도에 우뚝 서 있던 한국어 선전물의 빌보드들도 감격적이었다.

2년만에 다시 찾은 호지만 시의 도로에는 여전히 숱한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들이 줄도 없고 순서(?)도 없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덩치가 큰 차일수록 우선권이 있는 듯 했다.

트럭이랑 승용차가 빠져나간 뒤를 오토바이가 그 다음에 저전거들이 잽싸게 빠져나갔다. 보행자들이 끝 순위였다. 그래서 보도를 한번 횡단하려면 사생결단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젊은 여성들의 표정은 씩씩하고 밝았다. 어떤 때에는 엄마 아빠와 두 아이가 사이좋게 오토바이 한 대에 옹기종기 모여서 타고 간다. 가끔은 아이들 자리에 큰 독이나 돼지가 실려 가기도 했다. 어쩐지 어린 시절에 귀에 익었던 '새마을 운동 노래'가 들려올 듯했다. 수년 전 'Quiet American'이라는 미국 영화로 보았던 '아오자이' 차림의 전통적 여인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그 영화에서 본 베트남 여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었다.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잿더미에서 일어서려면 아마 이렇게 피나는 의욕이 필요하겠지…. 한국 전쟁 이후에 나의 부모님들이 지나온 과정이기도 하리라. 그래서인지 어느 곳에 가나 TV 앞에는 한국 연속극을 보려는 여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입흉내가 어려운 "아니고"나 "아야야" 등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자랑스러운 기분이다. 앞으로 내가 찾아다닐 아프리카의 시골이나 남미의 작은 해안가에서도 이런 말이 들릴 때가 오겠지! 아니 이런 언어들이 우리 자녀들의 뒤에 실제로 들릴 때가 오리라.

연속극만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나 환경의 보존에도 앞장서는 민족 돈을 버는 탁월함과 더불어 잘 쓸 줄도 아는 앞선 민족 이런 꿈을 가능케 해주는 세계의 여정이 나를 손짓해서 부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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