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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여행기로 담아낸 낯선 세상

이종호/OC본부장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고 살았던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수렵 채취에서 농경생활로 접어든 이후니까 길게 잡아도 1만 년이 될까 말까다. 그 전 수십만 년, 수백만 년 동안은 먹을 것을 찾아 천지사방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 유랑 DNA가 고작 1만 년에 사라졌을 리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 여행은 본능이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가보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다. 그렇지만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돈이 없어, 시간이 없어, 혹은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그것도 아니면 용기가 없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 사람들에겐 먼저 가 본 사람들의 경험담이 그나마 위안이다(여행기의 묘미는 상상력 자극이다. 그런 점에서 눈으로 보여주는 영상 다큐보다는 책이 여행기로는 제격이다).

나에게 인류 여행기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성경을 꼽겠다. 성경이 여행기라고? 그렇다. 구약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및 정착 과정을 그린 아브라함의 여행기로 시작한다. 이집트를 탈출한 후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는 모세의 40년 광야 여정은 성경 여행기의 절정이다. 신약 성서 27권 중 13권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 역시 지중해를 둘러싼 터키, 그리스, 로마 등지로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 여행기는 아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가 기본 바탕이지만 그 속엔 사랑과 전쟁, 배신과 음모, 갈등과 화해, 그리고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인간사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성경이 특정 종교의 경전이면서도 인류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이유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여행기는 성경 말고도 많이 있다. 세계 3대 여행기로 일컬어지는 7세기 중국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3세기 이탈리아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모로코 사람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가 대표적이다. 대당서역기는 손오공과 삼장법사로 유명한 소설 서유기의 모태가 된 책이다. 동방견문록은 유럽인에게 중국, 인도 등 동방에 대한 환상을 불러 일으켜 지리상의 발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중세 이슬람 자료의 보고(寶庫)이자 아랍 여행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우리 역사에도 훌륭한 여행기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통일신라시대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8세기 인도의 언어·풍속·지리·생활 모습 등에 관한 기록으로는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의 중국 여행기인 열하일기(熱河日記)도 있다. 조선 500년 최고의 문장이라고까지 평가받는 이 책은 그 사유의 자유분방함으로 당시 지식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었다.

'세계는 넓고 가 볼 곳은 많다'는 것을 처음 일깨워준 김찬삼의 세계 여행기, 젊은이들의 가슴에 배낭여행에 대한 꿈과 낭만의 불을 지핀 한비야의 오지 여행기, 그리고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높이며 여행과 공부가 따로가 아님을 가르친 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멋진 여행기라 하겠다.

최근 며칠 또 다른 여행기 읽는 재미에 푹 젖어 있다. 미주 시인 정찬열씨가 스페인 산티아고 500마일, 800km 순례자 길을 걸었던 이야기다. 저자는 31일 동안 낯선 땅을 밟아가며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웅숭깊게 풀어놓았다. 꼼꼼한 정보와 공감어린 추억 이야기는 읽는 맛을 더하고, 지금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통찰은 책의 깊이를 더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불온하다. 꾹꾹 눌러 놓았던 내 안의 여행본능을 다시 꿈틀거리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라서 그런가. 여행기 한 권에 이렇게 마음이 일렁이다니. 주말, 어디라도 한 번 훌쩍 다녀와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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