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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강연하며 '한국의 맛' 전파하는 열정파

[인물 오디세이] LA타임스 이혜진 객원기자

대학졸업 후 미술관련 일 10년
유년시절 꿈 쫒아 작가로 전업
17년째 LA타임스에 기사 제공
주류사회 대표 한식 전문가 돼
쿠킹북·여행서 등 출간마다 주목
TV PD, 요리강사까지 팔방미인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게 행복
앞으로 다양한 분야 도전할 것"


선뜻 지금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중년들 몇이나 될까. 파릇파릇하던 청춘은 진즉에 자취를 감췄고 깨알 같던 꿈들은 손바닥 안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 나간 지 오래. 그리하여 일용할 양식을 위한 치열한 일상만이 남은 중년들에게 행복이란 단어는 외갓집 다락방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유년시절 오르골만큼이나 마음 짠한 단어다. 그러나 여기 매일이 행복하다며 해맑게 웃는 아줌마가 있다. 이혜진(미국명 세실리아·45)씨다. LA타임스 푸드섹션 객원기자이며 작가로 또 주류사회에선 대표적인 한식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혜진씨. 그녀는 매일매일이 쨍하게 행복하단다.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못내 궁금해졌다. 그녀의 자택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 비밀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듯도 했다.

#글쓰기는 나의 힘

일곱 살 때 LA로 가족이민 온 혜진씨는 UC샌디에이고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가 잡은 첫 직장은 샌디에이고 소재 사진박물관. 그 후 LACMA를 거쳐 유명 가구업체의 쇼륨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등 주로 미술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러다 글쓰기를 업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99년 LA타임스 푸드섹션에 투고하면서부터다.



"서른 즈음 미술관련 일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 고민의 끝에서 작가를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워낙 글쓰기를 좋아했거든요. 그러면서 아홉 살 때부터 애독했던 LA타임스 푸드 섹션이 눈에 들어왔고 그래서 무작정 투고를 했죠. 다행히 담당 에디터의 반응이 좋았고 덕분에 지금까지 LA타임스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죠."

겨우 아홉 살 꼬마 숙녀가 푸드섹션 열혈 독자였던 까닭은 주말마다 지인들 불러 모아 부엌이 알싸한 냄새가 배도록 지지고 볶아 한상 대접하는 것을 즐겨했던 모친의 영향이 컸다. 덕분에 그 아홉 살 꼬마는 어깨너머로 녹두전 만드는 법이며 잡채 버무리는 법까지 구구단 외우듯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녀가 처음 LA타임스 푸드섹션에 기고한 기사는 김치. 배추김치부터 깍두기, 오이소박이 등 총 다섯 종류의 김치를 소개했고 사진은 모친이 김치 담그는 모습을 찍어 게재했다. 한국음식문화가 생소하던 당시 독자들은 그녀의 기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오이소박이는 그해 LA타임스 '탑10 레시피'에 선정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렇게 17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는 LA타임스 내 대표적인 한식전문가로 성장해 현재 그녀는 LA타임스 인터넷판 푸드섹션인 '데일리 디쉬'(Daily Dish)에 한식과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한편 지난 10월엔 월간지 LA매거진에 식당과 마켓 등 LA한인타운의 모든 것을 다룬 '코리아타운'이라는 기사를 실어 주목을 받기도 하는 등 한식을 통한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 문화·한식 전도사

그녀의 직업이 단지 기자만은 아니다. 지난 17년간 요리는 물론 여행관련 전문 작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지금껏 다양한 쿠킹북과 여행서적을 출간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주류사회에서도 한식과 한국문화 입문서로 알려진 '이팅 코리언'(Eating Korean). 그녀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책은 출간 된 2006년 '푸드 앤 와인'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최고의 책에 이름을 올렸고 유명 도서상에 노미네이트 될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이팅 코리언이 출간되고 한국 입양아들로부터 한국 음식문화와 한국을 알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편지를 받은 걸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어요. 작가로서 보람이 무엇인지 알게 된 계기가 됐죠."

이외에도 그녀는 유명 쿠킹북 시리즈인 '퀵 앤 이지'(Quick and Easy)를 통해 코리언 쿠킹과 멕시칸 쿠킹을 출간했다. 특히 코리언 쿠킹은 그녀만의 순수 레시피로 책에 실린 100여 메뉴를 직접 그녀가 요리한 것은 물론 사진도 직접 찍어 출간했다. 또 쿠킹북 만큼이나 그녀가 공들이고 좋아하는 작업은 바로 여행서 집필. 그동안 유명 여행전문출판사 프로머스(Frommer's)에서 한국 여행가이드북을 두 권이나 냈다.

"당시 영어로 출간된 한국 여행가이드 저자는 다 백인남성들이었죠. 그래서 더 사명감이 발동했던 것 같아요.(웃음) 첫 가이드북을 내면서는 한국에 약 4개월간 머물며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죠. 유명 관광명소보다는 진짜 한국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도전은 계속 된다

현재 그녀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고정적으로 하는 일 이외에도 벌여 놓은 일도, 들어오는 일도 산더미다. LA타임스와 여행전문 웹진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게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국 길거리 음식을 테마로 한 새 요리책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근 그녀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은 소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첫 소설을 위해 그녀는 지금 5년째 리서치 중이다. 어디 글 쓰는 일뿐이랴. 그녀는 지인이 제작중인 한 다큐멘터리에 프로듀서를 맡고 있으며 ABC 방송국이 제작한 한 쿠킹쇼 파일럿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물론 캐나다 등지에서도 한식 강연이나 요리클래스 요청이 있으면 1년에 서너 차례는 각종 행사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녀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 팀 몰러니(49)씨 덕분이다. 9년 연애 끝 결혼한 그녀의 남편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며 대학교수로 그녀의 열렬한 팬이며 한식 매니어이기도 하다.

"행복이란 게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게 아닐까요? 지금껏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어요. 실수하고 넘어진다 해도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으니까요."

문득 오래된 시구가 떠올랐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리고 여기에 제임스 딘의 한마디를 더 보탠다. 꿈꿔라, 영원히 살 것처럼.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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