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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파나마 문서와 시스템 위기론

[LA중앙일보] 발행 2016/04/12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4/11 20:51

안유회/논설위원

'파나마 문서 유출: 다음엔 누구의 머리가 구를 것인가' 4월 7일 CNN 웹사이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이다. 전세계 유력자들이 파나마의 법률회사를 통해 역외에 만든 유령회사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한 것을 보여주는 문건 1000만 건 이상이 문서 유출과 관련해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했다는 내용이다. 왕이 참수당한 유럽의 옛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2008년 아이슬란드는 한국도 겪은 바 있는 IMF 사태를 경험했다. 이런 마당에 총리가 탈세를 했다는 의혹을 가질 만한 문서가 나오자 국민의 10%가 국회로 몰려가 사퇴를 요구했다. 제목은 그 분노를 담으려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파나마 문서 유출을 보도한 기사 가운데 가장 센(?) 이 제목은 꼭 아이슬란드 국민의 분노만 담겨있는 건 아닐 것이다. 현재 전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가 어려운 경제 상황에 놓인 타이밍도 암시한다.

문서 유출은 금융 위기 이후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나게 한다.

그 중 하나는 소득 양극화다. 흔히 1% 대 99%로 표현되는 두 계층의 소득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문서에서 확인된 것은 유력자가 세금을 회피하려는 것은 전세계 공통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든 덜 성숙한 나라든, 경제적 선진국이나 아니든 상관이 없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 빠진 나라나 상대적으로 회복 속도가 빠른 나라나 마찬가지다.

또 하나는 세금 문제다. 많은 나라들이 금융 위기 이후 세수 확대에 애를 썼다. 경기가 안좋아서, 집값이 떨어져서 생긴 세금 감소를 메우려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부족분을 메우려면 새로운 세수를 찾아내야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외국에 있는 자산과 외국에서 발생한 소득까지 찾아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런 한 편에서 수퍼부자들은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이를 빠져나가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나라와 국민을 얘기하고 위기극복을 외치는 정치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사례를 불법이라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합법적인 경우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오히려 위기의식을 갖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시스템의 위기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의 위기가 거론된다.

11일 대형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직전 모기지담보증권(MBS) 부실 판매의 잘못을 인정하고 51억 달러를 내기로 했다고 연방법무부가 발표했다. 그럼에도 금융위기의 주범인 대형은행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누구의 이름이 올라있고 어떤 방법이 동원됐는지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배후에 러시아나 미국이 있다는 음모론은 오히려 핵심을 흐린다.

영국의 가디언지 칼럼니스트 트레버 팀은 전세계 지도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수퍼부자들이 자산을 은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파나마 문서가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에 본부를 둔 국제축구연맹(FIFA)의 부패를 파헤치고 중산층의 해외자산에도 세금을 부과하면서 더 큰 세원인 수퍼부자의 세금 피하기는 과연 몰랐을까. 이런 의문 제기다.

파나마 문서는 현재의 대선 구도를 가능케 한 것으로 지목되는 기득권 대 변화요구의 구분선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버니 샌더스가 조금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형은행을 주축으로 한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회의적인 샌더스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문서 유출로 도널드 트럼프와 맞붙는 본선 경쟁력이 더 강해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파나마 문서의 파괴력은 알 수 없다. 흐지부지 될 수도 있다. 기득권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5월 12일 런던에서는 글로벌 부패방지 정상회담이 열린다. 무슨 얘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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