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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독립유공자 유족 박청정씨에 표창장 전달

유족 표창 계기로 조부에서 손자까지
박병진 전 주 하원의원 가족사 알려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해 전 재산을 내놓았던 조부 박용문씨부터 한인 최초로 조지아 정계에 진출한 손자 박병진 전 주 하원의원까지 ‘대의’를 위해 3대에 걸쳐 도전해온 가문이 박수를 받았다.

흥사단 동남부지부(지부장 김정희)는 18일 챔블리에 있는 흥사단 지부에서 박용문씨의 아들 박청정씨에게 독립유공자 유족에 대한 표창장을 전달했다. 박용문씨 소개를 맡은 단원 김학규씨는 “일제시대 당시 글방 훈장이자 대농이었던 박용문씨는 자신의 전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바쳤던 분”이라며 “이런 분들과 함께 미국, 멕시코, 쿠바 등에 정착한 한인들이 30만달러를 모금한 덕분에 당시 임시정부가 세워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표창장을 받은 박청정씨는 마당에 커다란 궤짝을 묻어놓고 때가되면 꺼내 어디론가 먼 길을 떠났던 부친의 모습을 회고했다. 그는 “아버지가 한번 먼 길을 떠나시면 2, 3년씩 걸리기도 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은 물론 할머니도 어디에 가시는지 몰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박용문씨는 해방 후 조국이 다시 갈등과 분열의 양상으로 치닫던 1948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사후에야 지인들로부터 그의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들었다. 박청정씨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모인 친구분들에게 듣고 보니, 아버지는 본인의 재산과 주변에서 모금한 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셨던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공적을 기리며 슬퍼하시는 모습을 비로소 보았다”고 말했다.



이후 국가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된 박청정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직후 1남 2녀를 데리고 미국행을 선택했다. 박병진 의원은 당시 9살이었다.

박씨는 “플로리다에서 조용히 살아왔는데 아들이 정치를 하면서 갑자기 한인사회에 나오게 됐고, 지금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며 말을 끝냈다.


조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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