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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지도자의 눈을 가리는 사람들

[LA중앙일보] 발행 2016/04/22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16/04/21 22:16

이종호/OC본부장

# 중국 한나라 때의 유학자 유향이 쓴 설원(說苑)이란 책이 있다.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온갖 지혜와 잠언이 담긴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거기에 육정(六正) 육사(六邪)라 해서 각각 여섯 종류의 바른 신하와 나쁜 신하 유형이 나온다.

먼저 나쁜 신하란 ①나라의 녹만 축내고 머릿수만 채우는 구신(具臣) ②앵무새처럼 지당한 말씀만 되풀이하는 아첨꾼 유신(諛臣) ③거짓 정보로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아 임금의 눈을 멀게 만드는 간신(奸臣) ④이간질과 중상모략만을 일삼는 모리배 참신(讒臣) ⑤자신의 부귀영달만 추구하고 여차하면 반역도 서슴지 않는 적신(賊臣) ⑥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지신(亡國之臣)이다.

다음은 바른 신하 여섯 유형이다. ①높은 인격을 갖추고 군주를 영광되게 만드는 성신(聖臣) ②어질고 자애로운 양신(良臣) ③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내 놓는 충신(忠臣) ④지혜롭고 학덕 높은 지신(智臣) ⑤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정당하지 않은 재물은 결코 탐하지 않는 정신(貞臣) ⑥직언과 고언을 마다하지 않는 직신(直臣)이다.

#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나쁜 신하와 바른 신하는 있다. 다만 군주가 영민하여 귀를 열고 어진 이를 가까이 하면 충신이 많았고, 거꾸로 귀가 얇고 용렬한 군주 밑에선 간신배들이 더 활개를 쳤을 따름이다.

우리 역사를 봐도 그랬다.

무열왕 김춘추를 도와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은 대표적인 성신(聖臣)으로 꼽힌다. 조선 초 명재상 황희는 양신(良臣)의 대명사다. 충신은 더 많다. 성충, 계백, 흥수는 백제의 3대 충신이다. 박제상과 죽죽은 신라 충신으로 이름을 남겼다. 최영과 정몽주는 고려 충신으로, 사육신과 생육신 혹은 이순신 같은 이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충신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모두가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던졌거나 임금의 잘못을 일깨웠거나 일편단심 절개를 지킨 사람들이다.

나쁜 신하도 있었다. 연산군 시대 유자광과 임사홍은 조선 최고의 간신으로 꼽힌다. 아첨과 이간질, 무고와 궤계로 임금의 눈을 가려 연산군을 조선 최악의 폭군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무수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화(士禍)의 주역들이기도 하다. 망국지신으로는 구한말 매국노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 5적을 들 수 있겠다.

요즘은 어떨까. 왕조시대도 아닌데 무슨 임금-신하 타령이냐고?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면 국정을 살피고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데 있어 그 정신이 다를 수 없다. 그럼에도 바른 신하는 드물고 지도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나쁜 신하들만 우후죽순 판을 치니 이렇게라도 걱정을 해 볼밖에.

# 여당의 참패로 끝난 4·13 총선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입지가 꽤 난처하게 됐다. 특유의 불통과 아집이 불러온 당연한 귀결일 터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민심을 읽어내지 못하도록 방조한 주변 당료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여차하면 배신자로 몰리거나 자리에서 쫓겨나곤 한다는 핑계도 궁색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배에 물이 들어와 침몰 직전인데 딱 한 사람 듣기 좋으라고 알랑거리는 말만 일삼고 엉터리 정보만 늘어놓는 것이 공복(公僕)의 도리는 아니지 않는가.

지도자 하나 잘 못 세워지면 나라꼴 우습게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기업이나 단체, 하다못해 조그만 친목 모임조차 마찬가지다. 문제는 함량미달 리더는 때가 되면 바꿀 수 있지만 리더 곁에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나쁜 신하'들은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리더의 분별력을 기대하는 것 외에 양신·충신은 못돼도 유신·간신의 오명은 남기지 말아야지라는 말밖에 읊조릴 수 없는 세태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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