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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에서 겪은 지진의 추억

박낙희/OC취재팀 차장

"아빠, 우리도 빨리 비상식량과 물 준비해야 해요."

저녁식사 도중 갑자기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딸아이들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하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가 지진이 나면 먹을 수 있는 캔푸드 식량과 물, 옷가지, 운동화, 손전등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자 둘째, 셋째도 지진이 나면 식탁 밑으로 숨고 헤어질 경우를 대비해 만날 장소를 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아이들의 성화는 최근 일본 구마모토와 에콰도르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 뉴스에 더해 학교에서 가주 지진에 대비해 비상품을 준비하라는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토네이도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지진 역시 경험하기 전에는 심각성과 무서움을 알기 힘들다. 특히 지진은 정확한 발생 시점을 미리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전 일본 도쿄에서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일본에 가기 전에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걱정 했었는데 막상 지내보니 일본인들에게 지진은 일상 생활의 일부였다. 나 역시 잠깐씩 흔들리는 정도의 지진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금도 소름이 돋는 지진을 체험했다. 1992년 2월 2일 새벽이었다. 기숙사에서 잠자던 나를 누군가 막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잠결에 혼자 쓰는 방에 도둑이 들었나 싶어 놀라 눈을 떠보니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진이었다. 크게 한번 흔들리더니 수초간 흔들림이 지속되면서 책장의 책들이 떨어지고 창문이 덜컹덜컹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난 어쩔 줄 모르며 전등이 얼굴에 떨어질까 이불을 푹 덮어쓰고 지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흔들림이 멈추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후 지진에 놀라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도대체 얼마나 강한 지진이었는지 궁금해졌다.

TV를 켜자 모든 방송이 지진을 속보로 전했다. 각 방송국마다 전하는 지진 규모가 약간씩 달랐지만 일본 기상청 지진예지정보과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그니튜드 5.9로 도쿄만 남부 92.3Km 심해에서 발생해 7초간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매그니튜드 6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같은 에너지로 진앙지로부터 거리에 따라 느껴지는 지진의 강도는 도쿄에서 진도 5를 기록했다. 당시 도쿄 인근에서 발생한 강진은 1985년 이래 처음이라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다.

지진 발생 보도와 함께 지진으로 자동 차단된 가정용 개스 복구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방송이 1시간 가량 이어졌다. 기억엔 지진으로 떨어진 물건에 노인 한 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난로가 넘어지며 화재가 1건 발생한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지진으로 화재 예방을 위해 그 넓은 도쿄 일대의 개스가 자동 차단된 점과 신속하면서도 차분한 보도, 일본인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피해가 적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날 이후에도 3일과 5일에 각각 매그니튜드 4.1과 3.7의 여진이 이어져 긴장을 풀지 못했던 생각이 난다. 24년이 지났지만 '지진의 추억'은 평생 잊지 못할 듯 싶다.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왔지만 LA 인근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바람에 지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언제 엄습할지 모를 '빅 원'에 대비해 말 나온 김에 이번 주말 아이들과 지진대비용품이나 장만하러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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