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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폭동 24주년, 그날 잊지 말자"

당시 자율방범대 존 이씨
고 이재성 희생정신 기려

"1992년 4월 30일 밤을 잊지 못합니다. 재성이가 저 대신 죽은 것 같아 늘 생각이 나네요."

4·29폭동이 발생한 지 24년이 지났지만 존 이(63)씨는 당시 상황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이씨는 "지금도 혼자 있으면 재성이와 헤어진 순간이 떠오른다"며 아픈 기억과 씨름하는 모습이다.

1992년 4월 30일, 이씨는 당시 폭동 한인 피해자 중 유일하게 숨진 고 이재성(당시 19·샌타모니카 칼리지 1학년 재학)군과 함께 있었다. 그와 이군, 한인 젊은이들은 웨스턴과 5가에 있는 가주마켓 주차장에 모여 자율방범대 역할을 자진했다. 한인 라디오방송을 들으며 한인 업주들이 경비 지원을 요청하면 주저 없이 달려나갔다.

"재성이가 죽기 전날부터 가주마켓 주차장엔 젊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구방망이, 총을 들고 나섰죠. 어머니나 아내가 찾아와 위험하니 집에 가자고 혼내기도 했고요."



존 이씨에 따르면 이재성군은 당시 원산면옥(3가와 호바트)에 폭도가 들이닥쳤다는 지원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원산면옥 앞에 도착할 때 폭도로 오인 받았고 총격으로 숨졌다. 이씨는 "저와 일행이 지원 나가려던 것을 재성이가 자기 친구랑 가겠다고 했다. 출발한 지 3분이 지나 총성이 들렸는데 그 아이가 죽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존 이씨는 이재성군 사망 후 4·29폭동 평화대행진도 앞장섰다. 마음의 빚 때문이다. 24년이란 세월이 지난 요즘 이씨는 야속함을 더 느낀다. 그는 "다들 폭동을 잊고 사는 것 같다"며 한인사회가 4·29 폭동에 무덤덤해진 반응을 꼬집었다. 특히 한인사회의 세대 간 포용과 세대교체를 주문했다. 폭동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이민 2~3세대의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재성이가 개죽음을 당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인사회가 과거를 기억하려고 하지 않고 각자 사는 일에만 매달리잖아요. 단체장이나 리더들이 반성하고 한인사회를 위해 구심점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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