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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뒤에서 수많은 얼굴을 보았지…다들 지금이 행복한 순간인지 몰라"

원로 사진작가 박제돈씨
시한부 삶 속 첫 개인전

시한부 남편은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하나님의 치료 광선"이 남편을 낫게 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 2시간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간간이 눈가가 젖긴 했지만,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내내 웃었다.

그 희망의 증거가 부엌 한 쪽에 산처럼 쌓여있다. "상황버섯, 비파잎, 엉겅퀴, 그라비올라…암치료 약재들이에요." 아내는 생소한 약초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마치 하루하루 더 허락해달라고 기도하듯.

남편은 LA한인사회 1세대 대표 사진작가 박제돈(62)씨. 1984년 올림픽과 유니언에 '팍스 포토 스튜디오(Park's Photo Studio)'를 연 이래 30여 년간 한인들의 희로애락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결혼사진만 매주 5~10쌍 정도 찍었으니까,얼추 5000쌍은 되겠네. 그때 한인 인구를 생각하면 한인 결혼식은 거의 나 혼자 다 찍었던 거지."



그 신혼부부들이 낳은 아이가 자라 예비신랑신부로 찾아올 동안의 세월이었다. 그 많은 사람을 사진에 담으면서, 그는 사람을 마음에 담았다. "20년 전인가. USC 졸업생이라는 한 학생이 임신한 색시를 데리고 와서는 돈 없다고 외상으로 결혼사진 찍어달라더라고. 얼마나 당당하던지 얼떨결에 나도 그 자리에서 '해주마'했지. 그 친구는 아직도 고맙다고 연락해."

그렇게 마음에 담았던 사람들이 지난 몇 주간 홍수처럼 그에게 연락해왔다.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3주 전 산에 들꽃을 찍으러 갔다가 토하고 쓰러졌다. 지난해 항암치료를 끝내고 이겨냈다 싶었던 전립선암이 재발했다.

"간, 쓸개로 다 퍼졌다고…수술도 어렵고, 항암치료도 의미가 없다고 하데." 의사는 그에게 '1개월'을 선고했다.

인간의 시간대로라면 그에겐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그래서 그를 '형'이라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사진쟁이들은 그를 위한 특별한 행사를 기획했다.

"생각해보니 한번도 사진전을 연 적이 없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개인전을 준비 중이야."

40여 년간 찍은 사진 중 100점을 그가 골랐고, 동료와 후배들이 그 중 50점을 엄선했다.

그는 필름 사진을 고집한다. "예전엔 좋은 사진을 보면 칭찬들이 '사진 참 잘 찍었네'였는데, 요즘엔 '포샵 참 잘했네'라고들 해. 사진을 왜곡하고 과시하는 건 참기가 어렵더라고."

평생 사진을 찍은 그에게 '인생에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평생 카메라 렌즈 뒤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지켜봐왔어.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다들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카메라는 거짓이 없거든. 행복한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아."

후회되는 일을 꼽아달라 했더니 역시 사진으로 돌아왔다. "보이는 것만 찍으려고 했던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소중한데 말야."

그의 첫 개인전은 7일부터 10일까지 LA한인타운 6가와 웨스턴 애비뉴 북서쪽 코너 쇼핑몰 2층의 '에바다 아트 갤러리(Ephatha Art Gallery)'에서 열린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봐주길 바라는지 물었다. "내 마음을 봐줬으면 좋겠어. 유명한 사진가이기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첫인사를 할 때나 작별인사를 할 때도 그의 손은 따뜻했다.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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