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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스트라빈스키의 끝없는 이민의 삶

케니 백/색소포니스트(피바디 음대 박사과정)

어느덧 오월이다. 잡을 수 없는 시간이 아깝지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듯 이민자로 살아가는 나도 계절에 따라 마음속으로는 늘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과 힘든 생활이 뒤따른다. 처음 여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라, 모든 것이 나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환경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과 세월이 흐를수록 이민생활은 녹록지 않고, 한국과 고향이 그리워지는 만큼 미국을 이해하고 적응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누구보다 이민자의 아픔을 겪은 인물이기에 칼럼의 첫 인물로 소개한다.

러시아가 민족주의 음악의 색채를 띤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이다. 이때의 다양한 색과 화려한 관현악법을 자기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바로 스트라빈스키이다. 그는 발레라는 영역에서도 큰 공헌을 하였다. 20대부터 예술기획가 디아길레프와 함께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발레단에 합류, 1910년 불새, 이듬해 페트루슈카, 1913년 봄의 제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스트라빈스키의 삶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작곡가와의 차이점이자 그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도 이민의 삶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으로 스트라빈스키는 집과 모든 재산을 공산당에 몰수당했다. 결국 프랑스로 음악 활동을 옮겨야만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정말 그의 삶처럼 다양한 작품에 색을 입혀냈다. 파격적이고 그 시대를 잘 표현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꼭 들어야 할 작품은 무용음악으로 그의 개성을 잘 드러낸 ‘봄의 제전(1913)’이다. 20세기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 중 하나이며, 바그너의 뮤직 드라마 ‘링 사이클’과 비교될 정도로 논란의 대상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용음악이라는 장르를 다루었다는 점과 여기에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조국 러시아의 상황과 제1,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민족적인 요소가 늘 음악으로 표현되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음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의 첫 미국 데뷔는 1925년 뉴욕필하모니를 지휘하며 불새, 불꽃놀이, 페트루슈카를 소개하면서이다. 40개 이상의 작품을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초연하였는데 그중에 에보니 협주곡, 3악장 교향곡, 불새 모음곡 등이 연주되었다. 음악의 시학 (Poetics of Music in the Form of SixLessons) 책에 따르면 1939년 9월 그는 유럽을 떠나 하버드 대학 강의를 위해 미국으로 온다. 1940년 두 번째 부인을 만나 할리우드에 정착했다.

그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 안소니아 호텔에서 살던 중 사들인 지 얼마 안된 자택에서 마지막 임종을 맞이한다. 스트라빈스키는 현대예술의 탄생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20세기의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자,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것을 발판삼아 새로운 창조물을 세상에 내놓았던 현대예술의 위대한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민자의 삶이 늘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달려가듯이 스트라빈스키는 편안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음악 발명가이자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작곡가이며 진정한 이민자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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