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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막말의 트럼프 vs 품격의 트럼프

김완신/논설실장

정치권은 원래 말이 많은 곳이다. 특히 선거 캠페인 기간에 정계의 말잔치는 더욱 풍성해진다. 올해는 공화당 대통령 경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로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거침없는 욕설과 차별적 발언으로 일관된 캠페인이 계속되고 있다.

기성 정치인이라면 트럼프 수위의 말실수 하나 만으로도 정치생명이 끝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막말의 인기에 편승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유권자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막말에 면죄부를 주었는지 아니면 무시해 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트럼프는 건재하다.

공화당 경선 초기만 해도 트럼프의 파격적인 행보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기성 정치인의 교과서적인 수사에 식상한 유권자들에게 트럼프의 직설적인 언사는 신선하게 다가왔고 솔직한 느낌도 주었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트럼프라는 탐탁지 않은 후보를 내세워 민주당과 싸워야 하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민의 입장에서는 '품격'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의 욕설 수준의 말은 최근 들어 상대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과 맞물려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이 선거 캠페인에서는 효과적이다. 인간의 두뇌는 긍정적인 내용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점을 강조하면 좋은 후보라는 소리만 듣지만 경쟁자에 대한 비방은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거판의 논리다.

여기에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히틀러가 단순한 어휘와 궤변으로 독일 민족주의를 외쳐 열렬한 지지를 얻은 것처럼 트럼프도 보수층 미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있다.

거침없는 언사에 담아낸 '미국주의'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트럼프에게 남은 것은 본선이다. 17명의 후보가 난립했던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던 막말이 본선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비선거와 본선거는 다르다. 예선은 당의 대표를 뽑는 것이지만 본선은 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이다. 선택기준과 중량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진보성향의 싱크탱크 브룩킹스 연구소는 트럼프와 관련해 향후 시나리오 5가지를 소개했다. 그중의 하나가 트럼프의 이미지 '변신'이었다. 트럼프가 욕설이나 막말을 자제함으로써 부정적인 이미지를 일소하고 대통령다운 품격을 보이면 본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전망이다. 막장 드라마식의 인기로 경선 승리를 거머쥔 후 본선에서는 사려깊고 신중한 모습으로 변신해 선거에 임한다는 가정이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트럼프 반대자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지금까지 보여준 막말의 이미지를 벗고 변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선 과정에서 그는 인종·성별·종교·장애·이민으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미국 건국의 근간을 비난했다. 이 같은 정신은 미국이 지구촌 국가와 민주주의에 보여준 미덕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본선에서 다른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말이 남긴 상처까지 잊히는 것은 아니다.

탈무드에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저주와 비난의 말은 그 말을 한 사람, 들은 사람, 그리고 비난의 대상이 된 사람, 셋을 죽인다'고 했다. 이제 트럼프도 정치인이다. 한 사람의 막말은 세 사람을 죽이지만 정치인의 막말은 국민 전체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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