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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옥시 사태와 위험 사회의 그늘

오세진/디지털부 기자

독일의 정치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86)는 10년 전 경고했다. '의사소통 행위 이론'(2006)이란 저서에서 "우리의 생활 세계는 식민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사회가 발전하고 고도의 지식이 넘쳐나면서, 지식을 독점한 전문가가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과학자의 판단이 곧 진리가 되는 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우리는 이미 위험 사회의 한복판에 갇혔다. 여럿이 생명을 잃었다. 무시무시한 그 위험성을 몸소 체험하고는 무기력하게 또 후회와 분노의 탄식을 내뱉고 있다.

한국에서 터진 '옥시 사태' 말이다. 이번 사건은 위험 사회의 그늘을 제대로 드러냈다. 옥시는 인체에 치명적인 가습기 살균제를 팔았다. 몇해 전 의혹이 불거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해 옥시의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서울대 교수는 결국 구속됐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실험을 했는데, 교수는 돈을 받고 옥시에 유리한 부분만 발췌해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정말 진실을 왜곡했는지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큰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문가 집단은 충분히 우리의 삶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서다.

전문가의 농락은 이미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장애인을 공격 도구로 삼아 공익 소송을 벌여 서민의 돈을 뜯어낸 일부 변호사, 의료 사고를 내 환자 목숨을 빼앗고도 의학적으로 과실이 없었다는 의사도 있다. 죽어가는 환자를 상대로 값싼 약을 비싼 약으로 둔갑시켜 돈을 챙긴 제약회사, 평생 모은 돈으로 투자 이민을 온 사람의 돈을 가로챈 이민법 변호사, 멀쩡한 차를 고친답시고 수천달러를 뜯어낸 정비사까지 갖가지 만행이 신문을 도배한다.



위험 사회는 의심 사회로 흘렀다. 한국에선 선거철 각 후보의 지지도를 가늠할 수 있었던 여론 조사에도 조작설이 나돌았다. 각종 기밀 정보를 수집해 국민의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국정원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인터넷 댓글 조작 같은 꼼수로 정치에 개입하고, 보수 단체에 의도적인 시위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미세 먼지 농도를 알려주는 포털 사이트의 수치마저 믿지 못하게 됐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는 한인은 한인을 등쳐먹는다며 '한인 상호 불신설'이 나도는 게 현실이다.

위험 사회 개념을 세운 울리히 벡은 시민 사회적 감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감시의 기능은 학계와 언론이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

학교는 명문 대학과 고액 연봉만을 목표로 삼는 교육보다 윤리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을 선행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를 양성하는 박사 교육에서 '정직'과 '양심'에 대한 교육은 대학의 의무가 돼야 한다.

'기레기들의 무대'라는 비판을 듣는 언론. 하지만 여전히 비리를 고발하고, 신뢰를 다시 쌓을 방법을 논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길은 언론이란 공론장이다. 아직 작게나마 독자와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때, 자본의 권력에서 벗어나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기자들의 사명 의식이 위험 사회의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다.

칼럼 마감과 각종 취재로 마음이 조급한 오늘. 취재에 나서기 전, 수습 기자 시절 처음 손에 쥐었던 기자 수첩에 적힌 한 문구를 다시 들춰봤다. 대학 교수에 성폭행을 당한 한 대학원생을 보며 품었던 다짐.

'진리와 정의를 좇아 뛰자. 그래야 내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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