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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한국문학 세계화를 위한 '반역'

김완신/논설실장

"21살이던 7년 전만 해도 한국어를 몰랐고 한국인을 만나 본 적도 없어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데보라 스미스(28)의 말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소설 원작자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번역자도 당당한 공동수상자이다. 스미스가 문학 번역가로 들어서면서 선택한 외국어는 한국어였다. 동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국문학 번역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스토리 중심의 구성이 아니어서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이다. 절제된 문체에 함축된 의미를 영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번역은 극찬을 받았다. 심사위원 보이드 톤킨은 '완벽하게 적합한 번역'이라며 "소설이 지닌,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괴한 조화를 영어로 잘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세계문학의 변방이었던 한국문학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은 일단은 한강의 작품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이를 번역한 스미스가 없었다면 한국민의 소설로만 남을 수도 있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한국 문인의 작품이 거론되면서도 번번이 탈락한 이유 중 하나도 제대로 된 번역의 부재였다. 2012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영어로 번역돼 반향을 일으키면서 번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국 문학작품 번역은 대개 외국어를 전공한 한국 내 학자나 해외동포 번역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한국어를 습득한 외국인 교수, 또는 한국인과의 결혼 등으로 한국을 알게 된 학자들도 번역에 참여한다. 한계는 있다. 한국인의 번역은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 못하고, 외국인 번역자들에게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걸림돌이 된다.

학술서인 경우 해당 분야 학문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하다. 예전 출판계에서 중역(重譯·한 번 번역된 말이나 글을 다시 다른 말이나 글로 번역함)이 성행했던 시절 헤겔의 철학서는 독일어 직역본보다 일본어 중역본이 한국의 연구학자에게 인기가 높았다. 독일어만 알고 헤겔철학을 모르는 학자의 번역은 이해가 어려웠지만 헤겔에 정통한 일본학자의 번역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책은 읽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번역 작품의 선택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까지 세계인의 관심을 끌만한 보편성을 지닌 작품보다는 한국만의 특수성을 표현한 작품에 집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한국적인 배경을 탈피해 작품성에 주목하자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도 한국문학 번역작품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는 작품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한국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책을 소개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독자들의 관심은 '한국'이 아닌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채식주의자'가 타인종 독자도 공감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라는 생각에 번역 의사를 먼저 제안했었다.

번역은 단순히 낱말이나 어휘가 가진 뜻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다. 문학작품 번역은 문화와 정서를 '이식'하는 작업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번역이 어렵다는 뜻이다. 원작의 훼손이 없는 완전한 번역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작품은 지식과 정보 전달이 목적인 학술서와다르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이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성급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번역에 대한 관심과 전문 번역문학가의 양성이 시급하다. 한국문학이 세계로 나가려면 번역이라는 '좁고 험한' 출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번역이 어렵다면 최소한 '반역'이라도 쉼없이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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