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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미국은 일본에 속고 있다

이종호/OC본부장

1853년 미 해군 페리 제독이 4척의 군함을 이끌고 지금의 도쿄항인 에도만(灣)에 입항,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다. 당시 거대한 '흑선((黑船)'과 근대적 신무기 앞에 일본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결국 일본은 이듬해인 1854년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었다. 일본 근대사의 시작이자 서구화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후 미일 양국은 전략적 파트너로 한 세기 이상 밀월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두 나라의 밀월은 우리에겐 때론 악몽이었다. 1905년 러일 전쟁 직후 미국과 일본이 비밀리에 체결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대표적인 예다. 주 내용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면 미국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겠다는 것. 이는 훗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

미국의 일본 챙기기는 2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 계속됐다. 미국은 일제 공산품을 최대한 수입해 줌으로써 일본의 산업화를 촉진시켰고, 석유와 고철 등을 공급해 군수산업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일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침공함으로써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동남아 등을 유린하며 인류 역사상 최대 최고 최악의 만행을 자행했던 바로 그 태평양 전쟁이다.

전쟁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곳의 원폭 투하로 끝이 났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은 무조건 항복했지만 미국은 또 다시 일본을 보듬었다. 군국주의 상징이던 천황제를 그대로 존속시켜 일본의 국체를 보존해 줬고 민주주의도 이식했다. 한반도에 6·25가 발발했을 땐 일본을 병참기지로 삼아 경제 재건의 발판까지 만들어 주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자신을 침공했던 전쟁 상대국에 대해 그런 관용을 보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저변엔 중국이나 러시아 견제라는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이 깔려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국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일본은 언제나 속마음(혼네)과 바깥 표정(다테마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 국무부가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 통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집필 의뢰했던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에서도 누차 경고하고 있는 바다. 실제로 틈만 보이면 언제든지 돌변하는 두 얼굴의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은 미국도 이미 진주만 침공 때 뼈 아프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미국은 자꾸만 일본이 어떤 나라라는 것을 잊어가는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 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히로시마가 어떤 곳인가. 인류 최초의 원폭 투하 현장이자 2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다. 그런 곳을 미국 대통령이 찾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역시 사과 방문이 아니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전국이 축제 분위기라는 것부터 께름칙하다. 현직 미국 대통령의 피폭 현장 방문 자체가 '사과의 염(念)'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다.

원폭 투하 후 71년이 지났지만 여태 어떤 미국 대통령도 히로시마를 찾지 않았다. 민간인 원폭 피해라는 인류사적 비극의 현장이긴 하지만 자칫 '일본의 원죄'를 희석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반성을 모르는 나라다. 이러다간 앞으로 일본이 미국에게 원폭 피해자 배상까지 요구하고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적반하장의 상황은 일본의 특기이고 우리도 위안부나 독도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그것을 누차 경험하고 있다. 아무리 선한 뜻도 선한 상대일 때 통하는 법이다. 그러기엔 일본의 역사가 미덥지 못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지켜봐야 할 우리의 마음이 여러 가지로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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