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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지상의 방 한 칸'

김완신/논설실장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중략).' 김사인의 시 '노숙'이다. 시의 주제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노숙의 삶을 표현한 시어 만큼은 절박하고 애절하다.

'노숙(露宿)'은 한뎃잠을 말한다. 사방이 가려지지 않은 바깥에서 자는 잠이다. 영어로는 '홈리스(Homeless)' 정도로 번역된다. 홈리스의 정의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정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적합한 주거 공간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집 없는 사람은 물론 셸터, 텐트, 차량, 박스 등에서 자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홈리스의 범위를 확대해 주거 공간이 있어도 안정감과 안락함을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 홈리스까지 포함시키지만 보통은 물리적 공간이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LA지역 홈리스가 크게 늘었다. 카운티 전체로는 4만7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이중 2만8000명이 LA시에 있다. 홈리스 중 남자가 68%를 차지한다. 연령은 25~54세에 57.6%가 집중돼 있다. 인종별로는 흑인이 전체인구의 10% 미만이면서 홈리스의 50%를 차지해 가장 많다. 다음으로 히스패닉 33%, 백인 14%, 아시안 2% 순이다.

LA지역 홈리스는 지난 해에 비해 11% 증가했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여파에 빈곤층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홈리스들이 점유(?)한 지역은 작년 대비 80%나 늘었다. 불과 몇년 사이에 거리에 홈리스 텐트가 많이 들어섰다. LA다운타운에 주로 있었던 홈리스를 이제는 한인타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홈리스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주거비용의 상승을 저소득층 임금인상폭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재개발을 명목으로 낡은 아파트가 헐리고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거비 압박은 더 커졌다. 하버드 주택연구소에 따르면 매년 12만~13만 채의 저소득층 아파트가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LA지역 홈리스 중에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주거비를 감당 못해 차나 텐트 등에 장기 거주하면서 홈리스 아닌 홈리스 생활을 하기도 한다. 또한 지난 60년대부터 정신질환자 치료방침을 바꿔, 병원이나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사회로 복귀시키면서 장기적으로 홈리스 증가의 원인이 됐다.

LA뿐 아니라 미전역 대도시의 홈리스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뉴욕은 2000년과 비교해 불과 15년 사이에 홈리스 숫자가 3배 늘었다. 이제 홈리스 문제는 미국 대도시 공통 관심사가 됐다.

노숙자 증가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로컬 정부들이 노숙자 시설확충, 노숙자 지원을 위한 증세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노숙자 지원대책보다는 노숙자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전의 집은 주거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변질됐다. 삶을 위한 공간에서 투자의 대상으로 바뀌면서 부의 과시와 축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집이 본래의 가치를 잃으면서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으로 홈리스는 계속 늘고 있다.

김사인의 또다른 시 '지상의 방 한 칸'에는 "초라한 몸 가릴 방 한 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중략)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시에서는 연민이라도 읽히지만 노숙자에게는 무력한 삶이 있을 뿐이다. 지상의 방 한 칸의 얻지 못해 지금도 차가운 거리에 몸을 누이는 홈리스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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