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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백문이 불여일견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Dr. C! 나 좀 살려 주시오." 가까운 지역에서 개업한 내과 의사의 목소리다. 내과 의사가 정신과 의사한테 살려달라니 뭔가 얼떨떨했다. 환자 하나가 따라다니며 귀찮게 굴어 죽을 지경이니 정신병원에 입원 좀 시켜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연락해 스토킹(Stalking)으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1989년 할리우드의 젊은 인기여배우였던 레베카 샤푸어가 2년 동안 쫓아다녔던 한 강박증 남자 팬에 살해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언론은 유명인의 죽음을 앞다퉈 보도했다. 결국 캘리포니아 의회는 특정인을 계속 따라다니며 괴롭히면 법에 저촉된다는 반스토킹 법을 만들었다.

지금 미국 50개 주가 캘리포니아를 쫓아 이 법을 시행하고 있다. 스토커는 소유욕ㆍ질투심ㆍ복수심으로 얼룩진 강박증의 성격 단면을 보여주며 주로 30대 남자에게 많다. 그런데 내 환자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40대 초의 여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인간의 원죄 '남자의 성기는 저주의 막대기'란 성 오거스틴의 말이 그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성격 형성과정을 설명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발달과 에릭슨의 자아 형성단계를 잘 끝마치지 못한 성격의 소유자로 특히 남자들과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



더구나 어떤 남자가 성추행을 하려는 바람에 심한 신경 쇠약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게 몇년 됐다. 그녀는 어느 해 감기가 걸려 내과 의사한테 갔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봄으로 간단하게 치료와 처방을 끝내는 데 이 내과 의사는 달랐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말로 시작해 친절하게 자세히 증상을 물은 다음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웃는 얼굴로 처방전을 내주었다. 그녀는 의사의 행동은 틀림없이 자기를 좋아하는 표시라고 믿었다. 그래서 답례의 징표로 여러 번 전화하고 가끔 카드와 꽃도 보냈지만 소식이 없자 의사 집까지 찾아 왔던 것이다.

이 환자의 증상은 Erotomania(색정광)로 옛날에는 '노처녀 정신증'이라 불렀다. 자기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공개적으로 말은 않지만 자기와 사랑에 빠져 있다고 확신하는 망상증의 하나로 보통 다른 정신병과 함께 나타난다. 대상은 주로 배우ㆍ가수ㆍ운동 선수나 정치인이 많아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며 망상증과 더불어 법적인 문제까지 겹쳐 정신과 의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병이다.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범인 존 힝클리도 색정광증 환자로 여배우 조디 포스터가 자기한테 사랑에 빠진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기 위해 대통령을 죽이려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진료실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먼저 망상증에 먹는 약의 용량을 올리고 추적법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내과 의사를 쫓아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리고 클리닉의 소셜워커에게 환자를 데리고 교도소 두어 군데를 견학시켜 주라고 부탁했다. 감옥이 어떤 곳인가를 그녀 눈으로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던가! 환자가 교도소를 다녀온 뒤로 내과 의사와 연락을 끊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도 24시간 항상 아픈 게 아니다. 정상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많다. 교도소 견학 처럼 간단한 상식적 방법이 환자와 내과의사 모두를 도와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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