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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산실ㆍ원시림 속 증기기차…'메모리얼' 연휴에 떠나는 추억여행

'거리를 휘감아 부는 바람에 비릿한 생선 냄새가 물씬하다. 해 저문 거리의 포도엔 호박색 가스등 불빛이 어린다. 골목엔 10대 몇몇이 어울려 키득거리고 있다. 근무 교대시간이 이르렀는지, 거리엔 통조림 공장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어리 어획량이 예전만 못해서 근무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어 거리에도 음울한 기운이 전염된 듯 어둑신한 분위기가 감돈다.'

해질녘 몬터레이의 통조림 공장 거리(Cannery Row)에 섰다. 지금은 정어리 비늘로 외관이 번뜩이던 통조림 공장은 말끔한 레스토랑이나 기념품점으로 바뀐지 오래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게도 자꾸만 거리의 풍경은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얼마 전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 '캐너리 로'로 유명한 북가주 해안도시 몬터레이와 모로 베이 그리고 내륙의 헨리코웰 레드우드 주립공원을 하룻밤을 묵으며 다녀왔다.

◇ 몬터레이 '캐너리 로'

한때 정어리 통조림 제조업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그 공장들이 모여 있던 지역을 '캐너리 로'로 불렀던 곳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대량 남획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인근의 살리나스에서 태어난 존 스타인벡은 당시 미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불황에 허덕이는 노동자의 고된 삶을 '캐너리 로'(1945)에 담담하게 묘사했다.



1954년에는 이곳을 배경으로 한 '달콤한 목요일(Sweet Thursday)'을 발표했다.

당연하게도 거리는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 각종 상점들로 여느 관광지처럼 활기가 넘친다. 소설 속의 분위기는 겨우 거리의 벽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모래사장과 도로를 경계 짓고 있는 시멘트 벽에도 조그만 목조 어선으로 출어에 나서는 두 어부가 그려져 있다. 맵고 짰을 그 당시의 생활상이 묻어난다.

캐너리 로와 프리스콧 애비뉴가 만나는 곳에 스타인벡 플라자가 조성돼 있다. 입구에는 존 스타인벡의 흉상이, 바다에 면한 광장에는 바위와 동상들로 이뤄진 15피트 높이의 대형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이 조각품은 스타인벡의 112번째 생일을 앞두고 지난 2014년 제작됐다고 한다. 여러 인물 중에서 정상에 앉아 있는 이가 스타인벡이다.

캐너리 로 끝 오른쪽 바닷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족관(Monterey Bay Aquarium)이 있는데, 이곳 역시 당시의 통조림 공장을 개조한 것이라고 한다. 피셔먼즈 워프(Fisherman's Wharf)에 들어서니 식당마다 입구에 간이 테이블과 솥단지를 내놓고 관광객들에게 맛보기 클램차우더를 내민다. 몇 군데 간을 보다가 그 중 짜지 않은 곳으로 들어가 큼직한 둥근 빵 속을 파내고 클램차우더(Clam Chowder Bread Bowl)를 담은 간식에 맥주 한 병을 시키니 창밖으로 노을이 진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해질녘은 언제나 특별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추수 끝난 논에서 벼 뿌리가 삭아들 겨울 해거름, 언 손 불어가며 딱지치기, 자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면 동네 어머니들은 정짓간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아이들을 불러 들이곤 했었지. 여행지의 노을은 논일 밭일로 갈라진 어머니의 목소리와 너무도 닮아 있다.

◇ 헨리코웰 레드우드 주립공원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북쪽으로 300마일을 달려야 도착하게 되는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예닐곱 시간이면 가 닿게 되는 곳에도 울창한 레드우드 삼림이 있다. 샌호세 남쪽 샌타크루즈의 헨리코웰 레드우드 주립공원이 그곳이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며 하얀 수증기를 가득 뿜어내고 있다.주위를 둘러 보니 널찍한 들판에 19세기 풍의 서부시대 마을이 등장하여 눈을 즐겁게 해준다. 녹슨 옛날 증기 기관차의 잔해 인쇄소 사진관 초미니학교 식당을 비롯한 옛날 건물들이 드문드문 서 있어 이국의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이윽고 기차가 요란하게 기적을 울리며 역을 빠져 나가자 바깥은 곧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운 레드우드 원시림 천지다. 다시 한번 승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지붕이 없으니 시선도 자유롭다. 고개를 젖혀 한껏 심호흡을 해 본다. 폐포 하나하나에 끼어있던 도시의 공해가 한순간에 청량한 공기에 밀려나는듯 하다.

여정은 출발지인 로어링 캠프에서 베어 마운틴 정상까지다. 1963년에 가설된 이 철로는 편도 2.5마일의 협궤철도다. 기차가 요리 조리 거대한 레드우드를 피해 쉴새 없이 기적을 울리며 힘겹게 가파른 정상을 오른다. 30분만에 드디어 기차가 정상의 반환점에 도착한다. 15분간 휴식을 취한 기차는 다시금 출발역으로 돌아간다. 날씨가 흐리면 지붕이 있는 디젤기관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13세 이상 왕복 27달러.

이 공원에는 공원 한 가운데를 지나는 로렌조 강과 거대한 레드우드 사이로 난 산책로가 20마일이나 된다. 이중에서 0.8마일의 레드우드 그로브 트레일이 걷기에 편안하다. 매년 60만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엔 연례 남북전쟁 재연행사도 예정돼 있으니, 이때야말로 방문 적기다. 기병대 진군, 소총 전투, 대포 발사 등 실제와 흡사한 남북전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글·사진=백종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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