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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나눠서 가는 수학여행

[LA중앙일보] 발행 2006/09/29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06/09/28 17:01

이종호 편집출판 집현전 대표

30여년 전 이야기입니다. 국민학교 6학년 늦은 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가 있던 부산 동래역에서 완행열차로 2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태어나서 그 때까지 가 본 가장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타보는 열차여행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잠을 자고 불국사로 석굴암으로 구경 다닐 때의 감동은 두고두고 설렘으로 남았습니다.

그 때 우리 반 아이는 9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콩나물 교실이었지요. 나중에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보니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는 모두 59명이었습니다. 결국 30명 가까이가 열차에 오르지 못했던 겁니다. 여행 날 아침 역으로 몰려든 아이들은 더없이 설레는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함께 떠나지 못한 아이들은 어둠 저편에서 그런 친구들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을 겁니다.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거의 해마다 가보는 서울이지만 매번 한국은 참 대단한 나라라는 것을 느낍니다. 정치 경제 안보 등 밖에서 걱정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은 너무나 잘 살고 있었거든요. 갈 때마다 달라지는 한국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이제 미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된 나라가 된 것 같았습니다. 오직 하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정치판만 뺀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동안 우연히 눈길이 가는 신문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수학여행을 갈 때 국내로 해외로 나누어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명분은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해 평소 가고 싶었던 곳을 택해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집안 형편이 여행지 선정의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사 자료를 제공한 여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국내외 수학여행 비용 차이는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1백만원까지나 난다고 했습니다. 또 경비를 대지 못해 아예 수학여행을 포기하는 아이들도 지난 해 4.3%에서 올해는 5.3%로 늘었다고 합니다.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30년 전에나 있었던 일이 아직도 펼쳐지고 있다니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같은 학교에서조차 나누어 여행을 가다니요? 너는 중국 나는 설악산. 너는 유럽 나는 제주도. 그렇게 떠나는 아이들 마음에 새겨질 편 가르기를 생각하니 차가운 사이다를 들이킨 것처럼 가슴이 싸아 했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잘 산다는 것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꿈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한국은 그동안 평등과 분배의 정의라는 구호에만 휘둘리며 달려오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하긴 그것 때문에 가진 것이 있어도 남들 눈치 보느라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렇게 보면 선진국 샴페인을 마음껏 터트리고 있는 한국에서 수학여행 정도는 나눠서 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돈 때문에 마음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아직도 세상 바뀌는 줄 모르는 구닥다리 세대라 핀잔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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