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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책장]정희왕후의 리더십

[워싱턴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6/06/06 05:51

이소영 언론인

여성 지도자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프랑스의 잔 다르크가 대표적이다. 그녀들의 인생과 업적을 이야기할 때 항상 ‘여성임에도 불구하고’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남성보다 더한 카리스마로 세상을 바꾸기도 했고, 특유의 섬세함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했다. 남성들과 더불어 역사를 만들어간 여성이지만 ‘여성성’이나 ‘외모’가 먼저 주목받았던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조선 최초로 정치에 뛰어든 여성, ‘정희왕후’(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의 역사서와는 다른 신선함이 있다.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의 비로 아들 예종, 손자 성종 2대에 걸쳐 수렴청정한 왕후이다. 계유정난으로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른 남편 세조의 업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수렴청정은 어린 임금을 대신해 정사를 맡은 것인 만큼 적어도 수렴청정 기간에는 임금을 넘어서는 최고 통치자가 된다. 명실상부한 정치인이다. 그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통치에 나서 만만치 않은 정치력을 발휘했다. 당대의 세도가인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고개를 숙일 정도로 뚜렷한 결단력을 갖고 있었던 여인으로도 평가된다. 특히 수렴청정을 시작하자마자 호패법을 폐지하고 백성들에게는 양잠을 장려하는 등 민생 돌보기를 우선하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희왕후가 글을 모르는 여인이었다는 점이다. 한문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몰랐기에 첫째 며느리인 소혜왕후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삼았다. 사실상의 여왕과 부여왕이 공존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정희왕후는 문자도 모르고 정치 교육을 받은 경험도 없지만, 그녀의 통치는 조선의 전체 임금들과 비교해도 서툴지 않았다.

하지만 늘 공과는 공존하는 법. 그녀의 통치가 완벽하지는 않았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공신의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키워준 부분은 결과적으로는 조선의 레임덕을 가져왔다. 무리한 잣대로 성종의 계비 윤씨를 사사하도록 해 연산군이라는 폭군을 등장시키게 한 것 또한 아쉬운 부분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종 6년 정희왕후의 인척들을 거론하며 욕설을 적어놓은 익명서가 발견되자 정희왕후는 스스로 수렴청정을 거두고 권력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존재는 사실 우리 역사에서 오랫동안 간과됐다. 역사를 주제로 한 사극이나 영화에서도 수렴청정한 정희왕후보다는 내훈을 쓴 인수대비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인수대비의 기구한 삶이 이유일 수도 있지만, 여성을 정치인의 영역보다는 흥미의 대상으로만 여겼기에 관심을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여성을 정치 주체로 보지 못하고 권력자의 보조인물로 인식해왔다. 그런 이유로 여성 지도자들의 업적은 평가절하돼왔다.

그로부터 550년이 지난 지금. 정희왕후의 리더십이 새삼스레 재조명받고 있다. 권력 앞에 의연했던 정희왕후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한국은 이미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 데다 세계적으로 여성 정치인의 역할이 많이 늘어난 이유도 있다.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같은 듯 다르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닮은 역사는 지금도 반복된다. 과거의 잘못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어리석음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 시대 정희왕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니 현재의 모습과 많이 겹쳐있었다. 정희왕후 정치가 현대 정치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함영이 작가의 책 ‘정희왕후’ 중 한 부분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권력은 손님이다. 잘 대접해주어 언젠가는 떠나 보내야 할 대상이다. 방문한 집이 아무리 좋아도 손님이 눌러앉는 것은 실례다. 정희왕후를 찾아온 권력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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