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칼럼 20/20] '나의 아버지 무하마드 알리'

김완신/논설실장

중학교 때로 기억된다. 수업시간 종이 울렸는데도 교사가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반뿐만 아니라 옆 교실에도 선생은 없었다. 조금 지나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복도에 나갔던 한 학생이 들어오면서 외쳤다. "오늘, 권투 중계하는 날인데 선생님들 모두 교무실에서 TV 보고 있어."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헤비급 세계챔피언 권투시합이 있던 날이다.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였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20대 혈기왕성한 조지 포먼의 우세를 예상했다. 알리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전성시대를 지난 그가 포먼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알리는 예상을 뒤엎고 8회 KO승을 거뒀다. 권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진 순간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지난 3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병원에서 별세했다. 링 안에서는 상대방을 쓰러트려야 하는 복서였지만 링 밖에서는 세상의 편견에 맞선 영웅이었다. 흑인차별에 정면으로 저항했고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면서 반전 캠페인을 펼쳤다. 알리에게 붙은 '민중의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는 권투 이상의 것을 이뤄낸 그에 대한 헌사였다.

LA타임스는 알리의 사망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아홉자녀 중 큰딸인 메리엄 알리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딸과의 인터뷰인 만큼 권투선수가 아닌 '아버지' 알리의 면면을 소개하는 내용이 많았다. 거친 주먹세계에 가려진 가정사의 소소한 부분을 통해 알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였다. 올해 47세의 메리엄 알리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면서 래퍼로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의 갱단가입을 막기 위해 건립된 비영리단체 이사도 맡고 있다. LA에 거주하는 그녀는 종종 차를 운전해 애리조나의 알리를 찾아갈 정도로 아버지와의 정이 각별했다.

그녀는 아버지 알리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가르침을 준 스승이었고 영적인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진정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알리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자식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 했다고도 전한다.



메리엄은 아버지와 같이 했던 가장 좋은 기억은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고 회상한다. 아버지와 신앙과 신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이런 대화는 그녀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다.

모성에 비해 부성은 항상 부차적인 취급을 받는다. 모성은 출산과 연결돼 본능성이 부각되면서 강인한 느낌을 준다. 특히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모성이 강조된다. 뉴스 헤드라인을 봐도 '두 자녀의 엄마 화재로 사망' '어린 자녀 남기고 불치병으로 세상 떠난 엄마' 등 유난히 모성을 강조한 제목들이 많다. 표현방식의 차이일 뿐 모성과 부성은 우열을 가리는 대상은 아니다.

전설적인 복서의 죽음 앞에서 그가 남긴 화려한 업적보다도 딸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아버지' 알리의 스토리가 더 감동적이다. 불치의 파킨슨병과 30년을 싸웠던 늙은 권투선수의 부성애다. 세계인의 가슴에 열정을 심어준 '복서' 알리이지만 가족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남기고 떠난 '아버지' 알리도 기억돼야만 할 것 같다.

메리엄은 지난 번 아버지의 생일잔치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가족모임이라고 한다. 손주에 이르기까지 3대가 모여 옛날 사진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그날이 아버지의 생일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생애를 마지막으로 '축하'한 날이 됐다고 회상한다. 그 모임이 없었다면 아마도 메리엄은 더 먼 시간을 거슬러 아버지를 추억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찾은 지 얼마인가. 벌써 다음 주말로 파더스데이가 돌아왔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