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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종교와 언론이 부딪치는 이유

[LA중앙일보] 발행 2016/06/09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6/08 22:46

장열/사회부 차장·종교담당

# 종교는 실존 너머 신념이다. 비가시의 영역이다. 오감만으로 이해하는 건 한계가 있다. 본래 '신'이란 존재도 그렇다. 그 자체로 성스럽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범접을 꺼린다.

종교는 신이 머물러서 성역일까. 그런 탓에 여느 곳과 동일하게 여겨지길 거부한다. 스스로 외부와 구별된 개체로 여긴다.

이성만으로 신심을 수용하는 건 불가하다. 종교는 신념이 근간이다. 도그마 없이 형성될 수 없는 체계다.

신이 진정 인간을 지키는가. 아니다. 인간의 자아는 성역에 갇힐수록 열성을 품는다. 착각에 빠진 채 되레 절대자가 거하는 성역을 보호하겠다며 파수꾼을 자처한다.

그래서 고착은 무섭다. 신념으로만 뭉친 자아는 이성을 밀쳐낸다. 종교가 균형을 잃는 발로다.

# 사람을 만나면 종교에 대한 대화를 나눠본다. 종교는 상대를 알아가는 좋은 말거리다.

종종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일상에서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도 정작 종교를 통해 작동하는 사고는 평소와 별개일 경우가 있다. 신앙이 아닌 '종교'에 빠진 탓이다.

신성불가침적 사고는 이분법적이다. 종교에 대한 찬사는 곧 신을 향한 영광이고, 비판은 신을 향한 공격이다. 신념만 앞서면 불법에도 합리성을 부여한다. 상식도 배제된다. 종교와 삶이 이원화된 폐해다. 과연 신이 나쁜가. 종교를 왜곡하는 인간이 나쁜 거다.

# 종교는 늘 타 영역과 상충한다. 신념을 공유할 수 없어서다. 특히 '사실'을 중시하는 언론이 종교를 다룰 땐 난해하다. 사실로만 신념을 풀어낼 수 없다. 언론의 한계다. 반면, 신념은 사실을 가릴 위험이 있다. 종교의 맹점이다.

동일한 글을 읽어도 해석은 제각각인 게 종교심이다. 내 관점에 부합되는 것만 '진실'이고, 저마다 '팩트'라고 주장하는 주관만 난무한다.

성역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치 않다. 비가시적인 게 신념인데, 그 안에서 가시적 사실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땐 서로 옳다고 우기는 주장보다는, 주장하는 태도에 조금이나마 신뢰를 두게 마련이다.

# 성역인 종교는 허물을 들추는 걸 싫어한다.

특히, 기독교인이 다수인 한인사회 특성상 교회 관련 보도는 늘 민감하다. 일부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 보도를 하지 말라"며 반발한다. 육두문자는 물론 불매운동까지 벌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기독교는 수많은 구성원으로 형성된 집단인 것을 잊은 걸까. 교회는 영향력 있는 피사체다. 보이고 드러난다. 만약 그게 일그러진 모습이라면 시선을 탓하지 말고 '나'를 바꾸는 게 맞다. 시선이 싫다면 차라리 덩치를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귀감이 될 만한 선행과 자랑거리는 보도가 당연하다. 종교 행사와 관련, 홍보가 필요하면 언론의 기능도 필요하다.

다만, 양지를 보도해야 한다면, 음지 역시 조명해야 하는 게 저널리즘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라고 뱉어낼 수 있지만, 언론의 기능과 역할까지 제한하려 드는 건 옳지 않다.

세상은 내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언론 역시 내 종교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착각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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