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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내려놓기

이종호 편집출판 집현전 대표

최근 이사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보름 정도를 빈 집에서 살았다. 진작 왔어야 할 이삿짐이 턱없이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삿짐 회사에 여러 차례 볼 멘 소리도 했지만 사정이 그렇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세간 하나 없는 빈 집에 덩그마니 몸만 들어가 지내자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게 또 금세 적응이 되었다. 나중에는 오히려 단순해진 그 생활이 편하기까지 했다.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은 없구나 그 동안 우리가 너무 많이 누리고 살았구나 너무 많이 가졌구나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치 수도자가 된 듯한 기분에 젖기도 했다.

하긴 소유하지 않음이 주는 편안함은 비단 이런 물리적인 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렵겠지만 마음도 비우고 이것저것 움켜쥐고 있던 것 한 번쯤 조건 없이 내려놓는 것도 큰 휴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알다시피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기쁨을 줄곧 설파해 온 분이다. 그는 글로써 뿐만 아니라 평생을 산골 암자에 혼자 칩거하면서 비우는 삶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10년도 더 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스님의 글이 있다. 깨끗한 빈 방에서 난 하나를 키웠다. 그것 또한 생명이기에 때 맞춰 물을 주고 조석으로 눈길도 맞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또한 집착임을 깨닫는다. 먼 길 한 번 떠나려 해도 늘 난이 마음에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을 남에게 주어버렸다. 그랬더니 정말 자유함이 생기더라는 것이 글의 대강이다.

요즘 한창 잘 팔린다는 '내려놓음'(이용규 지음)이라는 책도 포기하는 데서 얻어지는 기쁨을 전한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로 유학 간 필자는 8년여 공부 끝에 영예의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러나 그 즉시 약속된 명예와 지위를 모두 포기한다. 어렵게 공부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는 약속 때문이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찾아간 곳은 오지 몽골. 하지만 그곳에는 더 많은 일들 더 빛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온전히 비움으로써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게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우리 이민자들도 어떻게 보면 이미 한 번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이다. 기존에 가졌던 지식 경험 학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지고 온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과거를 철저히 부인하고 완전히 내려놓은 사람들이 더 빨리 적응하고 더 크게 일어설 수 있었다.

침체된 경기로 핵 문제로 다들 불안해하고 위축되어 가는 요즘이다. 이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것저것 잔뜩 싣고 달려 온 차처럼 속도도 줄고 힘도 떨어졌다며 푸념하는 사람도 많다. 바로 이럴 때가 무엇인가 내려놓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과도 통한다. 처음 이민왔을 때의 마음 처음 직장에 들어갔을 때의 마음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의 마음 이런 마음들이 팍팍해진 삶에 위안을 준다고 했다. 새로운 힘을 주고 열정도 되살리게 한다고 했다.

이 가을 나부터라도 내려놓음이 일깨우는 역설의 가르침을 깨닫는 그럼으로써 초심을 되찾아 가는 계절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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