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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 박광순 행장, 구한말 같은 한국 정세

(미래은행) 변화무쌍 국제 정세 눈 떠라

16세기 말 조선조 선조 때 오랜 전란을 겪던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일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정벌을 계획한다. 이러한 낌새는 조선에 전해지고 선조왕은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여 실상을 파악하도록 한다.

그런데 일본을 살펴보고 돌아온 사신들의 의견이 갈라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니 전쟁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일본은 별 볼일 없고 도요토미도 변변치 않은 인물이라며 전쟁준비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론은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으로 났고 왜군의 침략을 당한 조선의 백성들은 7년여 동안 갖은 고초를 겪게 된다. 일본 침략의 정보가 이미 있었으나 지도자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백성들이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왜란 중 팔도강산 전쟁터를 누비는 등 전국을 가장 많이 돌아다닌 왕이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명나라는 쇠퇴하여가고 만주에서 일어난 청나라가 강성해가고 있는 것을 주시하며 청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한다. 의리와 명분 보다는 국익을 우선시한 광해군에 의해 친청파가 득세하고 친명파는 소외된다. 결국 광해군은 친명파의 쿠데타에 의해 왕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친명파의 쿠데타에 의해 왕위에 오른 인조는 다시 명나라와의 화친을 도모한다. 이에 조선은 청나라의 미움을 사게 되고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온 나라가 또 외적에게 시달림을 받게 되고 인조왕은 한강변에서 청나라 왕 앞에 무릎을 꿇는 수모를 받는다.

200여년 뒤 19세기 초 서구열강이 다투어 아시아에 진출하여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차례차례 식민지화하여간다. 결국 중국(청)이 서구열강에게 힘없이 먹혀들어갔다. 중국이 넘어가는 것을 본 일본은 '탈아입구(아시아를 벗어나 서구화를 이룬다)'를 주창하며 과감하게 서구화에 나선다.

그 결과 일본은 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한다. 조선은 일본과 달리 모든 상황정보를 다 갖고 있었으면서도 쇄국과 소중화사상을 고집하다가 결국에는 일본에게 국권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일본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며 부국강병과 근대화를 이룩하였는데 수많은 침략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는 번번이 예상된 외침으로부터 시달려왔다.

위의 세 가지 국난의 경우의 공통점은 지도자들이 국가이익 보다는 당파나 분파의 이익 밥그릇 차원에서 국가대사를 처리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19세기 구한말의 정세와 거의 같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는데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문제의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정당간의 복잡한 이해 다툼만 어지럽다.

정당간의 단기적 이해관계를 떠나 거시적인 국가이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쓰라린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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