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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춤을 추는 것이 진실한 춤”

70년 외길 인생 … ‘무용계 원로’ 은방초 선생

지난 5월 1일 한국에서 은방초 춤 보존회가 설립됐다. 은방초 선생의 제자인 서영님무용예술원 서영님 대표가 중심이 되어 설립된 보존회는 ‘영혼을 판 춤꾼’이라 불리던 은방초 선생의 춤을 복원, 발굴하고 후학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은방초 춤 보존회 소식을 듣고 풀라스키 노인 아파트에 거주하는 은방초(사진·본명 은종협·86) 선생을 만났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아파트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 숨어져 지냈다는 그는 “사람들이 말 거는 것이 무서웠다.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인데 한국에서 제자들이 최근 방문해 기분이 좋다”며 웃어보였다.

▶ 정상급 무용가들의 스승으로 발돋움
15살의 나이로 무용이 좋아 발을 붙인 그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무용가들의 스승이 됐다. 1951년 3월 서라벌 예대를 졸업하고 1953년 은방초 무용학원을 설립한 그는 덕성여자 고등학교, 중앙대, 서라벌 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서라벌 예대 1회 졸업생으로 ‘타고난 춤꾼’이라 불리며 1973년 ‘별의 전설’(안무 송범)에서 견우역, 75년 ‘심청’(안무 김백봉)의 심봉사역, ‘원효대사’에서 대한대사로 출연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1950~60년대 남성무용 스타로 인기를 한 몸에 모았던 그가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도 벌써 38년이 지났다. 4년 전에는 고령으로 로렌스 길에서 30여년간 운영하던 무용학원을 정리하고 노인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는 “여자가 가진 것을 남자 무용수가 추니까 다르고 또 여자보다 더 섬세하게 추니까 사람들이 많이들 찾았다. 춤 레퍼토리는 보통 내 인생을 주제로 많이 추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을 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78년 디트로이트에 이민 그리고 이듬해 시카고로 이주했다.



▶춤으로 인간의 희노애락 표현
하지만 이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미국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일도 그리고 점점 잊혀가는 일도 한동안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한국만큼 자신을 불러주는 곳도 없었을뿐더러 운영하던 무용학원에 불이 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미국에 온 4개월 뒤부터는 한국으로 돌아갈까 봐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했다. 우울증도 오고 또 미래가 보장된 한국으로 다시 가고 싶었지만, 후배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시카고에서의 이민생활을 설명했다. 은 선생은 시카고에서 묵묵히 춤을 일궈오며 황무지에 가까웠던 이민사회에 자신만의 무용 분야를 개척,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공작 춤’, ‘알쏭달쏭’, ‘무당춤’ 등 은방초 선생의 춤 레퍼토리는 ‘신’전통무용으로 불린다. 한·흥·무·태 등 전통적인 한국 춤의 고른 특징과 함께 은방초 선생만의 독특한 리듬감과 과감한 춤사위 때문이다. 또 오랜 세월에 걸쳐 무대화한 춤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부드럽고 온화하게 표현하는 것이 은방초 선생의 특징이다.

▶이 생명 다할 때 까지 춤출 것
그가 늘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춤을 추라’는 것. 그는 “어떤 춤이 유명하다고 하면 거기 가서 배워오고, 또 어떤 춤이 좋다 하면 거기 가서 배워오는 무용가들에게는 큰 발전이 없다. 자신의 혼을 담아 추지 않으면 겉만 번지르하고 속이 텅 빈 무용가가 된다. 속이 꽉 차 있어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고 또 상대방에게 손짓, 몸짓, 눈짓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카고에서 종종 무용 공연을 보곤 한다. 시카고무용단 이애덕 예술 감독의 무대는 볼 때마다 발전하는 것이 보여 칭찬해주고 싶고 또 격려해주고 싶다”며 “제자들이 잘 되면 난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잊혀져가는 한국 무용을 널리 알리는데 후배들이 힘써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시카고에서 그의 무대를 기대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그는 “무대에서 죽는 것이 나의 소원”이라며 “지금도 춤, 사위를 개발하고 있다.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춤을 출 예정이다”며 웃어 보였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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