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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만만하게 생각했다간 평생 성범죄자 낙인"

워싱턴주 교정국 안용훈 루테넌트

기자생활 하다 경찰 꿈 키워
마흔 넘어 새로운 인생 도전
10년 새 3번 승진하며 두각
대륙횡단하며 새 비전 설계


LA에서 기자로 시작해 20년 가까운 취재생활을 마치고 올해로 만 10년을 꽉 채운 워싱턴주 교정국 안용훈(52.사진) 루테넌트.

최근 10년 근속표창을 받고 LA를 다시 찾은 그는 한인 커뮤니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숨을 고르던 그가 어렵게 한 마디를 건넨다.



"여전히 심각한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네요."

한인 커뮤니티의 안일한 범죄의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

특히 성범죄 인식은 위험한 단계를 넘었다고 한다.

안 루테넌트는 "단순한 접촉만으로도 유죄판결을 받고 성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며 "우리 문화는 용인되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범죄다. 정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한 사례를 들려준다.

한 남성이 백화점 여성 탈의실을 지나치며 살짝 훔쳐봤다. 안에 있던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 남성이 붙잡혔고 판결은 유죄.

남성은 순간의 실수로 성범죄자가 됐고 경찰 리스트에 등록됐다.

남성은 이제 경찰, 교정당국의 감시를 받게 된다.

주소지를 옮기면 빠른 시일 내에 보고해야 한다. 설상가상 보고를 잊으면 긴급체포명령이 떨어지고 체포된 뒤 또 재판을 받는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실형 또는 보호관찰 명령이 내려진다. 중범죄자가 되는 순간이다.

일반인들에게 개인정보가 오픈되고 교정국의 감시 수위가 높아진다. 지켜야할 것들도 많다.

한번 더 교정국의 명령을 어기면 3범의 전과자가 된다. 전국 경찰에 남성의 신원이 공개되며 평생 성범죄자로 낙인 찍힌다.

안 루테넌트는 "순간의 엿보기로 이 남성은 성범죄자가 됐다. 평범한 삶은 종지부를 찍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엿보기보다 높은 수준의 성추행, 성범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경종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과장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한층 더 진지한 표정으로 "미국은 성추행, 성범죄를 용인하지 않는다. 성추행 장면을 보고 신고만 해도 체포될 수 있다"며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주마다 큰 차이가 없다. 캘리포니아가 워싱턴보다 엄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이 이쁘다고 하는 행동들이 있다. 누군가 보고 신고한다면 '아동 성추행'으로 판결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하게 때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는 보호관찰관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안 루테넌트는 "한국어로 번역하기에 애매한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보호관찰관이다"며 "영어로는 퍼롤.프로베이션(Parole.Probation) 오피서다. 이들의 역할은 범죄자들의 보호가 아니라 감시다. 큰 차이"라고 말했다.

안 루테넌트는 징역형을 판결받고 일찍 가석방되는 범죄자들을 감시하는 게 주역할이다.

또 다른 범죄를 막아 커뮤니티의 안전을 지키는 것.

경범죄자들도 있지만 주로 마약, 강도, 살인 등 중범죄자들이 많다.

가석방 조건이나 판사의 명령을 어긴 범죄자들을 찾아 다시 체포하는 일이다보니 험한 경우도 많다.

임무 수행 중에 당한 부상도 여러번.

그는 "집행유예를 무시하는 한인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 기간 중에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중처벌된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그의 이력이 궁금했다. 어떻게 경찰이, 그것도 보호관찰관이 됐는지.

그는 1990년 LA중앙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다. LA경찰국 동양인수사과를 전담했다.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하며 안타까운 사연들도 많이 접했다. 한인 경찰, 수사관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막연하게 경찰이 되고 샆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어도 나이도 주변 여건이 쉽지 않았다.

98년에는 국민일보 스포츠투데이 창간멤버로 한국에서 기자생활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시애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오랜 고생 끝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추신수 선수의 데뷔 첫 안타 기사가 기자로서 마지막이었다.

그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후회없이 할 일을 찾고 있었다. 그 때 경찰의 꿈이 떠올랐다. 아내도 흔쾌히 지지해주었다"며 "나이 제한 없는 교정국으로 지원하고 몸을 추스리는데만 몇 개월이 걸렸다. 40대 나이에 20대들과 힘든 싸움이었지만 마침내 10번의 도전 끝에 배지를 달았다. 9전 10기였다"고 회상했다.

임관 후에는 보이지 않는 편견과 싸웠다. 언어는 특히 문제였다. 경찰 내부는 물론 범죄자들에게 무시당하기도 수차례.

하지만 이겨냈고 극복했다.

한국인의 피, 특유의 성실함이 빛을 발휘했다.

꾀를 부리지 않았고 항상 10분 먼저 출근해 10분 늦게 퇴근했다.

오랜 기자생활로 터득한 업무능력은 시너지를 냈다.

주경찰국도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10년간 3번 진급, 루테넌트가 됐다. 흔치 않은 케이스라고 한다.

최근 근속 표창을 받은 그는 대륙횡단에 나섰다. 한 달동안 8200마일을 달렸다.

지낸 세월을 돌아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보낼 날들을 설계했다.

안 루테넌트는 "꿈처럼 시간이 지났다. 자부심을 가지고 재밌게 일했다. 메이저 계급을 달고 62세 정년을 넘어서도 일하고 싶다"며 "여러가지로 어려운 시기다. 한인분들에게 힘을 드리고 용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경찰제복을 입고 있는 동안 범죄용의자로 한인들을 만나지 않기를 항상 기도한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백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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