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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정의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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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중앙일보] 발행 2016/07/12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7/11 20:41

안유회/논설위원

앵커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 7일 댈러스에서 경찰에 대한 조준 총격이 시작되고 시위 군중이 흩어진 거리에서 TV 카메라는 쓰러진 경관을 잡았다. 앵커는 침착하게 말했다. "우린 쓰러진 경찰관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카메라를 다른 곳으로 돌리라는 주문이었다. 카메라가 움직이고 화면이 바뀌자 앵커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비등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흑인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워싱턴포스트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수는 123명이다.

루이지애나와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흑인 사망은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사건이 해결점을 찾지 못 한 채 벌어진 반복이다. 바뀐 것이 없다. 다만 분명한 차이점이라면 흑인이 경찰관을 저격하는 반작용이다. '너희들이 죽이면 우리도 죽인다'는 극한적인 양상이다. 댈러스에서는 경찰관뿐 아니라 경찰서도 총격을 받았다. 호들갑스럽지만 '사실상 내전'이란 말이 나올 법한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경찰 총격이 불거진 데는 셀폰의 역할이 크다. 이번엔 아예 상황이 셀폰으로 생중계됐다. 많은 사건이 개인이 셀폰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면서 파문이 일었다. 앞으로는 경찰이 체포하려 하면 셀폰부터 꺼내 촬영하려는 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전보다 더 많은 사건이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그 많은 사건과 논란에도 도대체 경찰의 흑인 총격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경찰이 카메라를 달고 근무하는 등의 개선책에도 사태는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경찰이 시민의 조준 총격을 받는 극단적 상황까지 왔다.

뉴욕시립대 페이살 모하메드 교수는 8일 블로그에 올린 '왜 경찰 폭력은 끝나지 않는가'라는 칼럼에서 이런 의문에 답을 하려 애썼다. 모하메드 교수는 경찰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감수성 세미나를 하고 흑인 역사를 가르치는 정도의 대책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오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경찰관 개인의 태도와 무관하다. 흑인을 쏘는 경찰관이 흑인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하헤드 교수는 현재 미국이 심층부에서 분리된 사회이면서도 명시적인 분리 정책이 불법이라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그는 미국 도시에서 반세기 전보다 분리가 심화됐고 분리의 작동 시스템은 지역이라고 본다. 중산층은 학군이 좋고 거리가 안전한 동네를 꿈꾸고 기대하도록 교육을 받는데 경찰은 그런 지역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경찰은 21세기의 분리를 유지하기 위해 경계선 밖의 지역에서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찰도 결국 안전한 동네를 욕망하는 중산층의 인종적 시각이 고착화된 게임에 갇혀있으며 경찰의 부당한 총격은 21세기형 분리가 없어져야 멈춘다는 논리다.

경찰 저격이 심각한 것은 미국 사회가 또 하나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경제에 이어 정치가 극단화 되고 정의마저 양극화된다고 믿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미국은 더욱 위험한 사회로 빠져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마코 루비오의 말은 귀기울일 만하다. "흑인이 아닌 이들은 미국에서 흑인으로 경험하는 것을 절대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범죄 기록도 없는 흑인이 자동차 미등이 깨졌다는 이유로 검문을 받다가 (경찰의 총을 맞고) 자신의 차 시트에 쓰러져 뒷좌석에 앉은 네 살 난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가는 장면에 흑인사회가 왜 분노하는지는 우리 모두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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