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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영광의 민족사'에 대한 시대착오적 집착

[LA중앙일보] 발행 2016/07/15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7/14 22:08

이종호/OC본부장

# 최근 정부예산 45억원을 들여 만든 동북아 역사지도가 폐기됐다.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이 8년간 공들여 만든 지도다. 표면적 폐기 이유는 지도학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도에 표시된 한사군(漢四郡)의 위치 등이 식민사관을 따르고 있다는 재야 사학계의 문제 제기에 일부 국회의원들이 동조함으로써 야기된 일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BC 108년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설치한 낙랑군의 위치는 대동강 유역이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통설이다. 이는 일본 학자들뿐 아니라 해방 후 평양에서 발굴된 유물과 국내 역사학계의 축적된 연구 성과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재야 사학계는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 땅 요서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 또한 통설과 달리 중국 베이징 동쪽부터 내몽고 남쪽 요서 지역까지 아우르는 강력한 고대 제국이었다고 역설한다. 이런 주장에 밀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한 통설이 하루아침에 휴지가 된 것이다.

#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떤 나라든지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고 감추고 싶은 역사가 있다. 한반도 역사도 그랬다. 하지만 우린 알게 모르게 자조적인 역사관에 길들여져 있었다. 스스로를 낮춰 보고 민족의 잠재력을 부정했다. 일제의 뿌리 깊은 잔재이자 악영향이었다.

지난 해 출간된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이종호 저)'은 그런 부정적 의식을 털어내고 이왕이면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부분부터 먼저 알자는 취지로 쓴 책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역사를 무조건 찬양미화 하자는 쪽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 아쉬운 역사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역사적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과오에 대한 건설적 비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요즘이다. 여기엔 '찬란한 민족사' 복원에 힘쓰고 있는 재야사학의 '애국 마케팅' 역할이 컸다. 비등한 반대 여론을 묵살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관철시킨 박근혜 정부도 역설적으로 '바른 역사'에 대한 관심을 크게 환기시켰다. 하지만 나는 찬양 고무 일색의 민족사가 때론 불편하다. 광활한 만주 벌판 너머 멀리 시베리아, 중국 본토까지 우리 선조들의 무대였다는 상상은 물론 신나고 가슴 벅차다. 하지만 역사는 카타르시스를 위한 속풀이 대상이 아니다. 민족과 애국을 앞세우기 전에 실증은 적고 주장만 많은 사이비 역사라는 비판에 재야사학은 먼저 아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야사학이 역사 전공자 중심의 강단사학을 깡그리 식민사학이라 매도하는 것도 답답하다. 일제 총독부 조선사 편수관이었던 이병도 전 서울대 사학과 교수의 후예들이 지금까지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역사가 여전히 식민사학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재야사학의 오랜 주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한국 역사학계가 식민사학 극복을 화두로 70년 이상 축적해 온 연구 성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식의 소치'라는 것이 강단사학의 반박이다. 이에 대해 재야사학은 자신있게 '아니오'라며 대응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역사를 보는 창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자료나 검증된 연구방법론이 아닌 애국(사실은 애국도 아니지만)의 잣대에만 의존해 '영광의 민족사'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강행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밀실 집필이 우려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넓은 영토가, 강대한 군사력이 민족사의 영광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진정 역사를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지금 우리의 바른 처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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