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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나'로부터 해방된 자, 대웅

[LA중앙일보] 발행 2016/07/19 미주판 28면 기사입력 2016/07/18 18:23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죽음의 레이스다. 공격목표까지는 약 17cm. 멀다면 머나먼 길이다. 순조롭게 전진할 경우 목표까지는 대략 30분이 소요된다. 전멸할 가능성이 있는 이 레이스에 참여한 전사의 수는 약 3억 명이며, 때로는 5억에 가깝다.

공격루트는 깊은 주름계곡과 울창한 섬모정글, 점액성 늪지로 이루어져있어 수많은 낙오나 실종자가 발생한다.

공격 신호탄 발사와 함께, 전사들은 돌진하여 그 험난한 장애물을 뚫고, 적 아닌 적인 다른 전사들과 치열히 경쟁하며 살아남을 기약 없는 레이스를 펼치게 된다.

다른 전사들의 주검을 넘고 넘어 악전고투, 극소수의 전사만이 목표 가까운 지점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소수의 생존 전사(정자)들은 방심한 채, 한 찰나도 미적 거릴 틈이 없다. 이제는 난공불락의 요새(난자) 공격에 또 한 번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살아남은 전사들은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각자 앞머리에 장착된 탄도미사일, 즉 탄두에 분해효소가 탑재된 화학무기를 발사하여, 난자의 세포막을 뚫고 자신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세포막을 천신만고로 통과한다 해도, 이번에는 더욱 견고한 최후의 방어벽인 투명대를 돌파해야 한다.

전사들은 마지막 남은 필살의 무기인, 더욱 강력한 2차 분해효소 탄두 미사일을 발사하게 된다. 먼저, 이 미사일 발사로 방어벽을 약화 시킨 다음, 이제는 땅굴파기 작전을 펼쳐야 비로소 투명대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전사들도 죽기 살기로 땅굴파기작전에 돌입한다. 투명대 통과에 한발이라도 뒤처진 여분의 전사들은, 안전하게 수정란을 만들기 위해 난자가 보유한 화생방무기인 분해효소 분사에 의해 몰살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먼저 투명대를 통과한 전사는 난자핵과 하나로 융합된 수정란이 되어 출생 때까지 성장해 간다. 이렇게 한 생명은 태어난다. 가히 위대한 한 영웅의 탄생이다.

불교에서는 사후 재생과정을 삼사합회(三事合會)라고 한다. 윤회와 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결코 만만찮은 불교용어이다. 정자와 배란기의 난자, 임종 후 해탈하지 못한 업의 잠세력에 휩싸인 아집(我執), 이 세 가지가 융합하여 새 생명을 움트게 한다고 해서 이르는 말이다.

아무튼 그 영웅의 탄생도 시작일 뿐, 아직은 미완이다.

붓다께서는 "전장에 나가 만 명의 적을 이기는 일보다, '나' 하나를 이기는 일이 더 뛰어나다. 승리자란 나를 이긴 자, 이 사람이야 말로 대웅(大雄)이"라 하셨다.

모든 불행과 고통의 씨앗인 나(에고)를 이겨, 나로부터 해방된 자유인, 진정 완성된 대웅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놓아야 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날마다 죽어야한다.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한 자루 초처럼.

어디, 그 행사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그 일의 지난함을 정현종(1939- )시인은 이렇게 한탄조로 읊었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어디 우산 놓고 오듯' 전문)

허나, 진득이 익히다 보면 홀연, '우산 놓고 오듯 나를 놓고'온, 기특한 '나'를 발견하게도 되리라.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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