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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인연

김완신 문화부장

얼마전 신문에서 한 서예가의 1주기 추모 전시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고인의 1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유작을 모아 마련한 자리라고 한다.

무심코 지나치며 기사를 읽었는데 그 서예가의 이름이 한동안 소식이 끊겨 궁금해 했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서예가는 매년 본사의 창간 기념일이 가까워 오면 회사의 발전을 기원하는 휘호를 써 왔었다. 그 분은 정성스럽게 접어 가져온 서예 작품을 펼치면서 신문사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작품에 쓰여진 글에는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신문의 사명 등이 적혀 있었고 필체에는 노령을 뛰어넘는 힘찬 기개가 담겨 있었다. 서예작품을 가져올 때에는 작은 메모지에 글의 의미를 적는 자상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또한 기자에게는 기사 작성에 지침이 될만한 귀한 글귀를 적어 보내기도 했고 신문에 게재된 기자의 허섭스런 칼럼의 일부를 써서 보내 주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가 보낸 경계의 문구들은 나태해져가는 기자생활에 매서운 회초리로 남아있다.



노령의 연세에 어렵게 버스를 타고 신문사에 작품을 갖고 왔지만 자신의 글에 담겨진 뜻을 설명할 때에는 서예가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붓으로 한길을 살아온 서예가의 단아한 기품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몇년째 휘호를 가져왔던 분이 지난 9월 본사 창간기념일에는 작품을 보내지 않았다. 매년 창간을 축하하던 분이 오지 않아 조금은 궁금했지만 이내 일상의 분주함으로 그에 대한 기억은 잊혀져 갔다.

그런 중에 최근 1주기 추모 전시회 소식을 들은 것이다. 1주기라고 하면 돌아가신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것인데도 그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살았다. 1년 동안 소식이 오가지 못해도 그저 올해에는 휘호를 쓰는 것을 잊으셨나 정도로 지나쳐 버렸다.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취재원이었던 사람의 근황을 신문의 부고란을 통해 접하는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썼던 사람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 착잡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신문사 편집국의 한편에서는 부고기사를 쓰고 있는데도 이를 몰랐다가 다음날 지면에 인쇄된 차가운 글자로 취재원의 죽음을 만나게 되면 마음 한켠에는 회한이 남는다. 연로한 분들께 가끔 소식을 전했으면 죽음이 인연의 끈을 이렇듯 무심하게 끊지는 않았을 것을….

삶은 인연의 연속이다. 세상을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고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인연을 만들며 산다. 인생이라는 큰 바구니를 만드는 실타래와 같은 인연은 생활의 희로애락을 엮어가는 지난 시간들의 발자취다.

한해가 또 가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올해도 끝난다. 연말이 되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나와 소중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어렵다. 모두가 바쁘다는 이유로 변명을 삼고 있다.

연말을 맞아 이제껏 맺어 온 인연들을 한번쯤은 돌아보자. 세상을 살아오면서 함께 인연을 만들어 온 이들에게 안녕을 묻는 따뜻한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서 잊혀진 사람들이 시린 가슴으로 한해를 보내며 서로를 이어 준 가는 인연의 끈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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