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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입'도 다스리지 못하는 정치인

김완신/논설실장

'막말'과 '말실수'는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가 있다.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하는 말이고 말실수는 말을 잘못해서 저지르는 실수다. 막말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성'이 느껴지지만 말실수는 원뜻과 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말실수가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최고의 막말 아이콘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다. 지금은 많이 자제하고 있지만 막말의 수위나 영향력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다. 인종차별 여성경시 장애자 비하 동성애 문제 등 전방위로 독설을 쏟아냈다. 그의 막말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된 화술인지 품격없는 인성을 드러내는 말투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의 독설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 트럼프를 뛰어 넘는 막말이 한국에서도 나왔다. 지난 13일 LA타임스는 한국의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 파동을 보도하면서 '트럼프의 얼굴을 붉히게 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나 기획관의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해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시행했으면 좋겠다' 등의 발언을 인용했다. 비록 취중에 한 말이기는 하지만 한국민에게 엄청난 모멸감을 주었다고 덧붙였다.

LA타임스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발언을 나 기획관의 막말과 비교했다. 사회 엘리트들의 국민 비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2012년 대선 캠페인 당시 롬니는 "미국민의 47%가 정부에 의존해 산다"고 말해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LA타임스는 나 기획관의 발언에 비교하면 롬니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언급(Comparatively mild remarks)'이라고 지적했다. '막말'보다는 '말실수'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롬니의 실언은 백악관 입성을 막는 걸림돌이 됐다.



말은 항상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과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서 해석된다. 친한 친구사이에 가벼운 농담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식 석상에서는 사소한 말실수도 논란을 일으킨다. 또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대화의 본질이 왜곡되기도 한다.

지난 2011년 플로리다에서 열린 실직자들과의 만남에서 롬니는 자신도 실업자라는 발언을 했다. 실직자들을 위로하고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부적절했다. 디트로이트 재벌가에서 출생해 하버드를 졸업하고 투자 컨설팅 회사의 대표직과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역임한 롬니가 할 말은 아니었다. 두 번의 말실수는 그로부터 대중을 떠나게 했다.

정치인과 일반대중의 대화를 가정해 보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층에서 상층으로 향하는 비난은 건방진 소리 허튼 소리 정도로 치부될 수 있다. 종종 무시되기도 한다. 반면 상층에서 하층을 내려가는 비난은 자괴감을 갖게 한다. 가진 자의 여유로 지나칠 수 있는 말도 못가진 자에게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다. '개.돼지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더욱이 신분상승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교육을 담당하는 공직자에게서 나온 말이어서 비난은 컸다. 교육으로도 굳건히 닫힌 상류의 장벽을 허물 수 없다는 단언이었다.

말은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소통수단이고 모든 예의는 말에서 시작된다. 정치인의 발언처럼 말에 권위가 부여되면 예의는 더 필요하다. 정치인들의 막말과 말실수는 국민에게 고통을 준다. 언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정치인들에게서 더 높은 도덕성을 바라기는 어렵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커녕 자신의 '입'조차도 다스리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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