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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쓰는 짧은 편지] ‘페이지터너’가 만드는 음악세계

어른, 아이 할 것없이 한번쯤은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팟라이트를 받기 원하며 자신의 일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지만 무대 위에 선다고 해서 모두가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무대에 올랐지만 드러나서는 안되는 ‘페이지터너’의 존재가 그렇다.

미국에서 ‘페이지터너(page turner)’는 연주자 옆에 앉아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지칭한다. 음악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넘순이’, ‘넘돌이’ 라고도 불린다. 특히 피아노 악보는 연주자가 빠른 속도로 연주를 이어나가는 경우에 직접 넘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문 페이지터너를 고용하곤 한다.

페이지터너의 자격요건 중 첫째 되는 것은 악보를 읽는 능력이다. 흐름에 맞추어 악보를 넘겨주는 일은 연주자 만큼이나 큰 부담이 되는 역할이다. 또한 적절한 타이밍에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를 방해하지 않으며 악보를 넘겨주어야 한다. 무대 위에서 절대 돋보여서는 안되며 주로 피아니스트의 왼편에 앉아있게 된다.

연주자들이 앞으로 진행될 음을 미리 인지하면서 연주를 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에 연주자의 눈빛을 이해하고 악보를 넘겨주는 일은 긴장되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악보를 잘 읽는 연주자들도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악보를 넘기는 일은 참 어렵고 큰 부담감을 준다.



주위에 음악가가 있다면 악보를 넘기는 일로 진땀을 뺀 경험을 한번쯤은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페이지터너가 실수하는 모습도 목격하게 되는데 그 연주는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불안을 경험하게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연주에 방해되는 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태블릿 피씨와 전자 악보를 사용하여 터치로 악보를 넘기는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악장 데이비드 김은 전자 악보와 페달로 사용하는 AirTurn BT-105를 오케스트라 연주 때 설치한 후 발로 밟아서 악보를 넘긴다고 한다. 국내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도 종종 아이패드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전자악보가 클래식 공연 현장 전반에 대중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최근 들어 많은 도서관과 세계 유수의 기관들도 악보를 디지털화 시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래서 직접 악보 원본을 보고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늘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보로메오 현악 4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스 키친은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보는 종이 악보에는 강약을 표시하는 기호가 아홉 가지예요. 그런데 실제로 베토벤이 쓴 악보를 보면 약 스무 가지 다른 강약 기호가 등장해요. 피아노라고 다 비슷한 정도로 여리게, 부드럽게 연주하면 그만이 아닙니다. 베토벤은 피아노를 또다시 열 가지 정도로 세분화해 구분해 놓았어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라면 ‘곡 해석’의 과정을 빼놓을 수 없다. 곡을 연구하여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작곡가의 의도가 담긴 단서를 찾아내는 본질적인 일이다. 음악을 접하는 모든 연주자들은 곡의 해석과 작곡가의 의도적인 요소들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곤 한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함께 작곡가가 의도하는 감정, 흐름, 표현, 정서까지도 디지털로 담아내보려고 노력하지만 원곡에 표현된 섬세한 부분까지 전달하는 데엔 어려움이 따르는 듯하다.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종이 악보에서는 작곡가의 치열한 고민을 읽어낼 수 없죠.

손으로 쓴 악보를 보면 모차르트가 곡을 한꺼번에 쓰지 않고 부분 부분 나누어 쓰면서도 얼마나 천재적으로 곡을 써내려갔는지 발견할 수 있어요. (화가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의 ‘무언가(無言歌, Songs Without Words)’ 원본 악보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죠. 오늘날 군더더기를 다 빼고 정리된 악보만 접하는 우리는 작곡가가 산만한 성격이었는지 꼼꼼한 성격이었는지를 알 길이 없죠.”

손으로 적어낸 종이 악보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편리성과 급박한 생활패턴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매끄러운 연주환경을 만들기 위해 돕는 페이지터너도 지금같은 추세대로라면 언제까지 무대위를 지켜줄지 알 수 없다. 깔끔한 전자악보로 대체할 수 없는 풋풋한 연주환경을 그리워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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