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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이나마 행복하고 싶어요"

황혼 이혼·재혼 꾸준히 늘어
장수시대에 인식변화도 한몫
가족·재산·건강 등 걸림돌도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새롭게 부각되는 사회현상의 하나가 황혼 이혼과 황혼 재혼이다. 예전에는 주례사에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괴로우나 즐거우나 한 평생 다복하게 잘 살아달라'는 내용이 단골메뉴였고 신혼부부도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세상이 급변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특히 인생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삶을 택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이른바 황혼 이혼과 황혼 재혼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똑 같다. "남은 인생이나마 행복하고 싶다."

▶황혼 이혼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 60대가 넘어 이혼을 결정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한국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4년 황혼 이혼은 전체 이혼 사건의 28.7%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2012년부터는 황혼 이혼이 신혼 이혼(결혼 4년 만의 이혼)을 추월했다. 이 같은 추세는 남가주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LA의 한 한인 관련 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2~3년 전부터 황혼 이혼에 대한 상담이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성격 차이, 장기 별거, 가출, 외도, 가정폭력 등을 견디며 수십년을 참고 살았는데 자녀가 모두 가정을 꾸린 이제는 내 삶을 살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바보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경우도 있다.



황혼 이혼의 가장 큰 원인은 평균 수명이 늘면서 남녀를 막론하고 '내 인생을 찾겠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상당수 황혼 이혼의 경우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남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말이 동반된다는 점은 이 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줄어든 것도 한 몫하고 있다. 비아그라와 같은 각종 성 기능 강화제 역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전보다 능동적인 성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이를 즐기며 살겠다는 욕망이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LA 인근에 사는 A씨는 최근 "이혼하겠다'는 부모의 폭탄선언에 놀랐다. 부부싸움이 잦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했기에 이혼까지 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A씨는 "혼란스럽고 화도 났지만 두 분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자료를 살펴보면 시니어 세대의 이혼 경향은 두드러진다. 비교적 젊은 60대 뿐 아니라 70대와 80대 연령층도 이혼을 고민하고 있다.

2004년 70대 26명(여성 20명·남성 6명), 80대 9명(여성 6명·남성 3명)이 이혼 상담을 받았지만 2014년에는 70대 325명(여성 179명·남성 146명), 80대 37명(여성 15명·남성 22명)으로 늘었다. 70대의 경우 10년 사이에 12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예전에는 여성이 대부분 이혼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남성이 거의 여성 수준에 근접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경향도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이 매년 조사하는 혼인·이혼 통계 자료도 황혼 이혼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년 2363건이던 황혼 이혼이 2014년에는 3만3140건으로 약 14배 증가했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이혼율 중 혼인지속기간 20년 이상 이혼이 29.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혼 하는 부부 10쌍 가운데 3쌍이 황혼 이혼인 셈이다. 혼인지속기간 30년 이상 이혼(9.6%)도 지속적으로 늘어 10년 전보다 2.2배 많아졌다. 혼인지속기간이 길수록 이혼율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던 2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황혼 재혼

황혼 이혼 증가는 인생의 마지막 동반자를 찾기 위한 황혼 재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60세에 홀로 된다고 가정하면 남성은 약 22년, 여성은 27년을 홀로 살아야 한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세월인 셈이다.

남가주에서 영업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두리조아의 민 김 매치메이커는 "황혼 재혼에 대한 문의와 회원 가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을 위한 소모임을 정기적으로 운영할 계획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황혼 재혼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황혼 재혼을 원하는 시니어는 배우자 조건 가운데 취미와 미혼 자녀 유무를 가장 많이 따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 경우 남성과 여성 구분없이 대부분 경제력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취미나 무던한 성격을 최우선으로 꼽는 경향이 있다고 김 매치메이커는 귀띔했다. 여생을 함께 하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반려자를 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혼 재혼에 걸림돌도 적지 않다. 자식의 반대와 재산 분배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결혼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양쪽 집안과도 결합되는 문제인데다 어느 정도 유산이 있을 경우 이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2년 전 아내를 병으로 잃은 70대 초반의 C씨는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가족과 친구의 권유로 그는 LA 외곽지역에 있는 집을 팔고 한인타운의 한 아파트로 옮겼으나 그것도 잠시 뿐, 다시 외로움이 밀려왔다. 여행을 가자니 혼자서 가기는 어색하고 몸이라도 아프면 병원에 함께 갈 사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숙고 끝에 C씨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과부로 살아가던 아내의 친구 B씨에게 청혼했다. 그리고 양가 자녀와 상견례에 앞서 미리 재산정리에 들어갔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함께 할 B에게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나머지 재산은 자녀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박영선 변호사는 "황혼 재혼에서 재산이 걸림돌이 될 경우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아니면 일부 재산을 자녀에게 미리 증여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재산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를 고려해 재혼 대신 동거라는 형식을 택하는 시니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혼 재혼은 시니어가 남은 생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로,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재혼하면 동반자가 있어 안정감이 생기고 외로움과 성적 욕구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어느 정도 경제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삶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시니어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병일 기자 kim.byongi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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