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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혹시 제가 당선됐나요'

김완신 문화부장

신문사에 있으면서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전화는 '중앙신인문학상'에 관한 문의다. 마감이 26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전화 내용은 다양하다. 사고를 통해 여러 차례 응모방법과 마감일이 보도 됐어도 직접 대화를 통해 확인해보려는 독자들이 많다.

며칠전에 작품을 우편으로 보냈다며 도착했는지를 거듭 확인하기도 하고 또 올해부터는 이메일로도 작품을 모집해 '믿을 수 없는' 이메일이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를 묻기도 한다. 또 이미 보낸 작품을 수정했다며 이전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심사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번을 포함해 여러 번 문학상 공모전을 담당했었다. 공모전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응모 형식이나 작품성향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예전에는 원고지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초기단계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작품들로 바뀌더니 이제는 컴퓨터를 이용해 일반 인쇄물 수준으로 작품 외양이 세련돼졌다. 그러나 지금도 색바랜 원고지에 한자 한자를 채워넣은 작품이나 노트 용지에 빼곡하게 쓰여진 글들이 여전히 정겹다.

신인문학상 시즌이 되면 지난 90년대 말이 생각난다. 입상작 발표를 하루 앞둔 밤에 당직을 하고 있었다. 책상 앞에는 내일자 신문에 게재될 입상자 명단이 놓여 있었다. 이때 30대 초반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발표할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했는데 제가 당선됐나요."

당당한 목소리였다. 대개는 "제가 당선됐나요"라는 말 앞에 '혹시'라는 단어를 넣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렇지 않았다. 전화를 받고는 회사 규정상 입상 결과의 사전 통보가 금지돼 있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내일 아침이면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왜 밤에 신문사로 전화를 했느냐고 되물었다.

더 당당한 목소리로 답이 들려왔다.

"제가 돈이 없어서 지금 돈을 꾸러 나가야 하는데 당선상금 2000달러를 받으면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궁금증이 생겨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이름 석자를 거침없이 말했고 입상자 명단의 단편소설 당선자에는 그녀의 이름이 또렷히 적혀 있었다.

당선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했다. "당선을 확인해 드릴 수는 없지만 오늘 밤 돈을 꾸러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입상소식을 통보하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반대로 낙선을 알리는 것은 고역이다. 몇년전 한 노인은 전화문의에 낙선 소식을 전하자 "얼마 살지 못하는 이 늙은이의 마지막 희망이 문학상 입상인데 장려상이라도 안되겠냐"며 낙담하기도 했다.

바쁜 이민생활에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편지 한줄 보내기 어려운 생활에서 입상된다는 보장도 없이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승하 시인은 당선 후기에서 "외풍 센 방에서 동태가 되어 원고지를 메우고 부엌에 가 파지를 양동이에 넣고 태우며 손을 녹이면서 글을 썼다"고 회고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힘이 들고 그다지 유쾌한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문학상 출품은 입상을 떠나 자신에게는 소중한 기록이며 '황홀한' 도전이다. 지금 이 순간도 마감을 앞두고 한줄 한줄에 정성을 담고 있을 미래의 문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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