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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그들'과 '우리'

지난 연말 집수리를 했다. 내부 페인트를 칠하고 문짝을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일을 맡은 라틴계 인부는 일주일 정도면 공사를 마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와 신정 연휴라며 휴일보다 하루씩 더 보태서 쉬고 평일에도 하루 이틀은 일을 하지 않았다. 일을 오지 않는 날에도 연락조차 없었다.

결국 공사는 한달을 넘어갔고 집안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먼지와 자재가 쌓이고 소파와 침대는 비닐 커버에 씌어져 한쪽 구석에 처박혀졌다. 집안에서 몸 하나 눕힐 수 있는 곳은 2층 작은 방이 전부였다.

참다 못해 공사가 언제쯤 끝나냐고 한마디 했다. 당연히 미안하다는 반응을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빨리 빨리 하라고 강요하지 마라."

그는 자신의 일을 즐긴다고 했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연말연시 손님 초대도 취소해야 했고 한달 넘게 먼지 속에서 생활하는 것도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 기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텐데 왜 공사를 소홀히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극히 '한국사람적'인 생각도 해 보았다.

LA에서 한인들은 라틴계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영업 업주의 경우 라틴계 종업원 없이는 비즈니스 운영이 불가능하고 일반 직장인도 집수리나 기타 서비스 등에서 이들과 연결된다.

지난 29일 '게으름 피우지 마라'라는 말 한마디가 참극을 불렀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지난 29일 어바인에서 한인 남성이 일용직으로 고용한 라틴계 인부의 작업량이 작다고 지적하자 이에 격분한 남성이 삽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회성 사건이었지만 앞으로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맡은 일에 충실하지 않는 인부 이를 지적하는 주인 양쪽의 격화된 감정 그리고 작업 현장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공구들. 이런 것들이 연계되는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 이번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전형적인 특성으로 한인과 라틴계를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한인은 '빨리 빨리'를 외치고 라틴계는 '느긋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무엇이든지 빠르게 하려는 한인과 시간의 제한에 개의치 않는 라틴계가 만났을 때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히 성격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근본에는 뿌리깊은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문화는 삶을 지배하는 총체적 규범이며 역사와 생활방식을 통해 고정화된 관습이어서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인들은 한인끼리 라틴계는 라틴계끼리 산다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마찰도 없고 이번의 참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 특히 LA에 사는한 한인과 라틴계는 피할 수 없는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구조상 한인과 라틴계는 울타리를 높게 세우고 '그들'과 '우리'로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없다.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한편으로는 공생하고 한편으로는 마찰하기 마련이다.

함께 살아야 한다면 대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들'보고 '우리'가 되라고 할 수 없고 '우리'가 '그들'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울타리의 키를 조금씩 낮춰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다민족.다문화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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