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69.0°

2020.08.05(Wed)

[칼럼 20/20] 영화 '부산행'과 소설 '파피용'

[LA중앙일보] 발행 2016/08/17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6/08/16 21:11

김완신/논설실장

영화 '부산행'을 봤다. 영화가 처음 개봉됐을 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열차 탑승객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좀비'를 피해 부산으로 간다는 줄거리다. 외부 세계의 좀비는 달리는 기차로 차단되고 열차 안의 좀비는 객실 사이의 문에 의해 정상인과 격리된다.

플롯이 단순하고 특히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지루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흥미로웠고 한국관객들에게는 어색한 소재인 '좀비'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공식과도 같은 재난 속의 가족애 의인과 악인의 대립 등이 조금 진부했지만 재미를 반감하지는 않았다.

영화 '부산행'을 보면서 생각나는 소설이 있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파피용'이다. 한국어로도 번역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작품이다.

소설의 줄거리도 역시 단순하다. 타락해 가는 지구를 떠나 일단의 무리가 새로운 별을 찾아간다는 스토리다. 인간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14만4000명의 지구인이 빛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우주선에 탑승해 1000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영화와 소설은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파피용'을 떠올린 것은 한 가지 공통점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의 주요 스토리가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부산행'은 열차에서 '파피용'은 우주선이다. 공간은 각각 다르지만 그 공간을 벗어나면 살 수 없다는 극한의 설정은 동일하다.

영화와 소설은 인위적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본성을 보여준다. '부산행' 열차 안에는 가족애 사랑 연민 헌신 용기 등의 미덕이 존재한다. 또한 좁은 공간이지만 집단이기주의와 관료주의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병리현상이 축소판으로 재현된다. 단순히 재난영화로 넘기기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상징성도 강하다. LA타임스도 영화평을 통해 '대한민국의 현 사회상황을 정교하게 비판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오락 영화의 범주를 넘어 계층간 갈등과 사회적 불안감 등을 다각도로 조명했다는 것이다.

소설 '파피용'에서도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지구)를 떠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한다. 우주선 안에서는 정치도 법도 계급도 사유재산도 없는 이상향을 꿈꾼다. 하지만 지구의 축소판인 우주선에서 연인 관계에 있던 남녀 사이에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법이 제정되고 공권력도 생긴다.

결국 폭동이 일어나면서 1000년간의 비행을 마쳤을 때 불과 6명만 살아 남는다. 이들 중 1쌍의 남녀가 새 별에 도착하지만 결국 여자도 죽어 남자는 자신의 갈비뼈로 새로운 여성을 만들어 결혼하게 된다.

한정된 공간이 주는 의미는 크다. 집단을 축소하기 때문에 개인이 갖는 대표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소수만이 공간에 포함돼 개인의 상징성도 강하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폐쇄된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본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우주선 안에서는 선과 악 이기와 이타 미덕과 비행 정의와 불의 용기와 비굴 등 긍정과 부정의 역할이 펼쳐진다.

열차나 우주선이 아니라도 사람은 누구나 유.무형의 크고 작은 공간에 속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작게는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에 이르기까지 구성원의 하나를 차지하며 산다. 열차와 우주선처럼 물리적인 차단은 없지만 소속된 공간의 보이지 않는 경계로 완벽하게 벗어나지도 도망갈 수도 없다. 거대한 '열차'에 함께 탄 우리에게는 항상 긍정의 역할이 있다. 무한의 공간과 군중의 그늘에 숨어도 그 모습은 눈에 비치는 열차 속 장면일 뿐이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박유진 변호사

박유진 변호사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