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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의 퓨전에세이]때론 오래된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창 앞에 앉아 있다. 비가 온다. 천둥이 울고 있다. 드라이브웨이가 까맣게 젖어든다. 나무들도 비를 맞고 있다. 이런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내가 나인 것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서다. 갑자기 이 늦여름 풍경이 그리고 싶어 캔버스를 돌아다 보며 손에 잡히는 대로 CD 하나를 걸어본다.

‘Love letter in the sand’. 조용한 방 안에 퍼지는 노래, 여고시절 하교 길에서 본 ‘A summer place’ 영화 포스터가 기억에 선하다. 다음 곡은 ‘Just walking in the rain’. 출 줄도 모르는 춤이 추고 싶어진다. 살짝 행복한 것 같아진다. 행복이란 이렇게 갑자기 오고 또 그렇게 짧은 것인가 보다.

모르는 노래가 섞여있긴 해도 괜찮다. 무거운 삶의 짐을 살짝 잊게 해주는 이 마력, MP3나 일렉트로닉은 나와 친하지 않다. 옛것이 좋다. 이 음악들과 함께 살던 시절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는 듯 했고, 선택은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다. 찬란하던 젊음, 두려움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스쳐간다.

‘My heart cris for you, sighs for you, dies for you!’ 노랫말이 좋다. 가슴이 더워지는 것 같다. 다시 순수한 사랑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마종기 시인이 말했다. ‘미국인들은 시를 잃은 사람들’ 이라고. 그러나 이런 노랫말들을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시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시는 일간신문 우중충한 문화면, 그 하단에서 ‘다음 호에 계속’ 이라고 말하는 희망이어야 해요. 그리하여 인간의 목소리는 구리제품을 이겨내고 오직 죽음으로 초대받은 자들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어야 해요.

단테와 베아트리체에 비견되기도 하는 루이 아라공이 그의 부인 엘자에게 주었던 이 시가 샹송으로 다시 살아나서 많은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듯 음악도 다시 시로 부활할 수 있으리라. ‘인생은 스스로 알든, 모르든, 크든, 작든 저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말’ 이 진실이라면 아름다움이 보여 지고 느껴지는 길 위에 예술이 놓여있음을, 그리고 이것이 생의 의미이며 축복임을 생각한다.

“어느 햇살이 환한 봄날, 카를 요한스케이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난 축제기분이 되었다. 봄과 음악이 한데 어울려졌다. 난 기쁨에 전율했고, 음악은 새로운 색체를 만들어 냈다. 난 그림을 그렸다. 색체들이 음악의 리듬에 맞춰 진동하도록, 그렇게 그렸다.”

겨울이 길고 긴 어두운 북구 노르웨이에서 늘 병마에 위협을 받던 뭉크는 음악에서 힘을 얻어 붓을 들곤 했다. 그래서 저 위험스러운 실존의 암초들을 그가 에둘러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현대적인 영혼의 해석가가 되어 우리 영혼의 상처들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 대면서 자신을 들여다 보게 했던 그에게 음악은 많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부엌 캐비넷 구석에서 오래된 슬로우 쿠커를 꺼낸다. 이런 날은 깊은 맛의 스프가 제격이다. 감자, 당근, 양파, 쇠고기를 굵게 썰어 담고 물을 부어 플러그를 꽂는다. 쿠커의 몸통을 만져본다. 따뜻하다. 됐다. 고장 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방치에도 고장 나지 않은 게 고맙다. 그리고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옛 노래들, 오늘 아침 새롭게 일러준다. 무어든 오래된 게 좋다는 것을. 아무렴 사람도 그렇겠지. 그를 돌아다보는 내 마음을 그는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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