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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나라가 망해도 떵떵거리며 산다

이 종 호 / OC본부장

신라는 천년 왕국이었다. BC57년부터 AD935년까지 992년 동안 쉰 여섯 임금이 다스렸다. 첫 왕은 박혁거세였고 마지막은 경순왕이다.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갖다 바쳤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전하는 그 내력은 다음과 같다.

'서기 927년 9월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 수도 금성을 기습해 경애왕과 왕비를 죽이고 경애왕의 이종사촌인 경순왕을 왕으로 세웠다. 이후에도 견훤은 수시로 신라 땅을 침범해 왔고 신라 장군과 관리들은 잇따라 왕건에게 투항해 갔다. 더 이상 나라를 보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순왕은 마의태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기 935년 11월 결국 왕건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왕건은 항복해 온 경순왕에게 자신의 딸을 주어 사위로 삼고 후한 녹봉까지 내렸다. 뿐만 아니라 신라 수도였던 경주 일대를 식읍으로 주어 다스리게 했다.'

요즘 한국에선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1912~1989)를 그린 영화가 인기다. 공주는 왕비가 옹주는 후궁이 낳은 딸을 말한다. 덕혜는 고종 임금이 만년에 얻은 늦둥이 딸이다.

영화는 나라 잃은 조선 왕족의 비극적 생애와 민초들의 힘겨운 일상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덕혜옹주의 실제 삶은 독립투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에 강제로 유학을 가야 했고 대마도주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했으며 평생 고독과 병마에 시달렸다. 덕혜옹주의 개인사는 안타깝고 불행했다.



하지만 조선 왕족들의 물질적 생활은 나라가 망한 것과 상관없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면서 체결한 8개조 조약 중에는 조선 왕실과 전.현직 대신들을 적절히 대우한다는 내용이 중요한 항목으로 들어있다. 일제는 약속대로 작위를 수여하고 막대한 은사금까지 지급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제의 의도대로 친일파가 되거나 식민통치의 앞잡이가 됐다. 선조의 매국으로 얻은 부와 권력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세습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라가 망해도 지배층은 아무 상관없이 그대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이야기다.

나라가 어려우면 불쌍한 것은 일반 백성들이다. 입만 열면 애국애족을 말하지만 정작 국난 때는 자기이익 자기안위 챙기기에 놀랄 정도로 민첩한 것이 지배층의 속성임을 역사는 말해 준다.

민족사 최대의 국난이었다는 임진왜란 때도 그랬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불과 20일 만에 수도 한양이 점령당했지만 임금을 비롯한 관리들은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다. 6.25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인민군이 남침 사흘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할 때도 대통령과 정부 주요 관리들은 국민들에겐 괜찮다고 하면서 자신들만 서울을 빠져나갔다.

나라가 망하는 데는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첫째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배층의 분열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멸망 과정이 다 그랬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 안팎 사정이 구한말 그때와 너무 흡사하다는 이야기가 자꾸 들려온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우리 국민들이 좀 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은 경술국치일이다. 경술년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0년 8월 29일. 27대 519년 이어온 조선이 종말을 고했다. 그로부터 만 35년. 우리 선조들이 어떤 눈물겨운 삶을 살았고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우리는 안다.

그 첫날 국치일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치욕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가시섶에 누워 불편한 잠을 자며 쓰디 쓴 쓸개를 핥으며 재기와 복수를 다짐했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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