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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허공 꽃'을 꺾으면…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센터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1392년)한 태조 이성계가 어느 날 저녁 만찬에, 친구이자 개국공신이며 왕사인 무학 대사를 궁궐로 초대하여 마주앉았다.

건국 초, 경직된 궁의 법도와 격무에 시달린 왕이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마련한 자리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그새, 불콰해진 이성계가 한동안 대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농기 짙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뱉는다.

"대사! 거 대사의 상판이 어째 돼지처럼 생겼소이다."

그 말 품새가 계급장 떼고 '야자타임' 갖자는 요량일터.



이 느닷없는 왕의 짓궂은 농지거리에도, 대사의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나, 일순의 머뭇댐도 없다.

"전하! 전하의 용안은 부처님 상이옵니다." 이에 이성계는 손사래 치며 "아니, 대사! 농담이요, 농담하자는데…내 얼굴이 어찌 감히 부처님과 같다 하겠소. 허허"

이어진 대사의 한방에 이성계는 그만 껄껄 웃고 만다.

"전하!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옵니다."

이 에피소드는 무학 대사의 능청스런 응대와 기막힌 재치, 아니면 도인의 성숙한 방어기제만을 드러낸 한낱 농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 진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한 일종의 메타포이며 농담 중의 진담이다.

예화는 내 마음이 본 세상이 세상이며 우주다. 즉, 세상을 보는 내 마음의 눈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그 마음 그대로 세상이 보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심여화공사, 화엄경에서는 '마음은 솜씨 좋은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을 그려낸다'고 했다. 청정한 백지 위에 부처나 극락을 그리느냐, 반면에 축생이나 아귀, 지옥을 그리느냐는 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다.

물론 부처와 극락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오염된 마음의 내적정화가 선행되어야함은 불문가지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시 이래로, 역사적 전통이나 환경, 유전적 요인 등이 내재한 여러 생의 습기(習氣)와, 태어나 습득된 선입견과 편견으로, 우상화된 '자기이해'라는 주관적 망정(妄情)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은폐되어 상속된 심리적 동기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망정이라는 콩깍지에 눈이 씌거나, 철학자 베이컨이 주창한 그 마음의 '우상'에 맹목적으로 전도되어, 세상을 왜곡하여 구성하고 해석해 왔다.

따라서 불교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인식에 강한 의혹을 품어야 하며, 간단없는 정진으로, 이미 삼투되어 한 인간의 개성과 인격으로까지 고착된 그 콩깍지를 제거하고 우상을 깨트려, 해방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허공 꽃'인 공화와 같은, 자신의 허깨비세계를 전복시키는, 능히 내적인 역성혁명이라 하겠다.

조선말엽의 초의선사, 그는 차와 선(禪)이 한 맛이라는 다선일미사상으로, 전통차 문화를 꽃피운 '차의 성인'이다. 그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고 말한, 작가 마거릿 헝거포드(19세기ㆍ아일랜드)에 앞서, 이미 그 말의 속내를 이리도 아름답게 노래했다.

"눈앞의 꽃가지를 꺾으니, 저녁놀에 저리도 아름다운 산들이 많았구나."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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